피터3(어메이징 스파이더맨::피터) & 해리 오스본(샘레이미 스파이더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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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2(샘레이미 스파이더맨::파커)
“안돼.”
“아, 진짜! 왜요!”
피터의 이글거리는 시선을 무시하고 딱 잘라 거부한 해리가 팔짱을 끼면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래봤자 고작 대학교 축제 위원, 그것도 이벤트 접수 담당자일 뿐이면서 표정과 모양새로만 본다면 어디 대기업 총수라도 된 것 마냥 거만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이벤트 접수석의 자그마한 의자 하나가 대기업 총수의 거대한 가죽 의자보다도 더 달콤한 권력의 맛을 안겨주고 있었다. 해리는 파커를 꼭 붙잡은 피터의 손을 힐끔 흘겼다가 마주보는 시선 가득 반항과 불만을 담고 있는 피터를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이건 커플 이벤트라고.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솔직히 이런 이벤트에 진짜 커플은 몇이나 된다고!”
피터는 발을 동동 구르며 성화를 부렸다.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커플 이벤트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지적하는 소리였으나 해리는 뻔뻔스럽게 어깨를 으쓱이면서 형식적인 규칙이 적힌 안내판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참가자의 성별은 무관하되, 실제 연인 사이에 한하여 참가 자격이 주어진다.' 이벤트의 본질에 걸맞는 지극히 당연하고 합당한 규칙이었으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규칙이 그러하듯, 어떤 규칙에는 융통성이 적용되기 마련이다. 대학 축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커플 이벤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커플이라는 조건이 무색하게도 대학 이벤트는 이해관계가 맞는 두 사람의 우승 상품 노리기 대회로 전락된지 오래였고, 심지어는 관람객 조차도 이 이벤트에 나서는 한 쌍을 진짜 커플이라고 믿지 않는 지경에 도달했다.(물론, 좋은 놀림거리는 되었다.)
이렇듯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커플이라는 전제 조건은 이 이벤트의 규칙 중 가장 큰 융통성이 발휘되는 항목이었으나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융통성이란 어디까지나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고무줄처럼 변화해버린다는 점이다. 일개 학생, 그것도 올해 갓 입학한 신입생에 지나지 않는 피터는 축제 위원의 권력 앞에서 한없이 무력했다. 씩씩거리는 피터를 향해 피식 웃는 얼굴이 주먹을 한 대 날리고 싶을 만큼 얄밉기 그지없었다. 물론 아무리 얄미워도 피터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바람이었다. 파커의 가장 오래된 친우라는 해리의 타이틀은 피터가 감히 건드릴 수 없을 만치 견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해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파커의 착하고 귀여운 후배라는 자리를 꿰차버린 피터야말로 도무지 손댈 수 없는 성가신 존재였지만 말이다. 파커의 눈 밖에 나서는 안 된다는 각오만이 해리와 피터가 아직까지도 주먹다짐을 하지 않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였다.
“우리가 진짜 연인이면 어쩔건데요!”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모솔이던 애가 갑자기 너랑 사귄다고? 웃기시네.”
“애초에 증명할 수 있는것도 아닌데, 말만 맞추면 그만 아닌가? 안그래요, 형?”
파커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해리는 어림도 없다는 듯, 다시 한 번 꼬장을 부렸다.
“당연히 증명해야지. 앞 팀들도 다 확인 받았어.”
물론, 거짓말이다. 차라리 이 점을 물고 늘어져야 했겠으나 답답한 마음에 냅다 앞뒤 없는 소리를 질러버린 것이 피터의 패착이 되었다.
“어떻게요!”
“뭐, 키스라도 해보시던가.”
해리가 심드렁하게 대꾸하자 피터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피터로서도 해리에게 지기 싫다는 치기 어린 마음으로 인해 홧김에 내뱉은 소리였지만, 그는 피터가 억지를 부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파커를 품에 안아 올리기 위해서조차 이벤트를 빌미로 삼아야 하거늘─물론 피터가 이벤트에 나가고자 하는 이유는 그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다.─키스라니. 제 아무리 거짓 키스라도 파커에게 그런걸 요구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나마 이벤트 출전을 위한 이름뿐인 가짜 연인 행세만이 피터가 요구할 수 있는 최대치였던 것이다.
치사한 인간. 피터는 아득바득 이를 악물며 해리를 노려보았다. 어차피 지도 못할 거면서. 힐끔 바라본 파커는 이런 실랑이에는 별다른 관심도 없다는 듯 태평해 보였기에 더욱 자신이 없어졌다. 애당초 이벤트에 나가자며 조른 쪽도 피터였으니 파커에게는 이대로 계획이 무산되어도 상관 없을 터였다. 결국 한숨을 내쉰 피터가 포기하고 몸을 돌렸다.
“죄송해요, 형. 저 때문에 시간만 뺏기고…”
마침내 해리의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떠올랐다. 짐짓 불쌍할 정도로 축 늘어져 버린 피터의 어깨를 보고 있으려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꼴좋다, 애송이 녀석. 축제 일정이 발표되었을 때 피터는 그저 파커와 함께 대학 축제를 즐길 생각으로 마냥 신이 났었겠지만, 해리는 달랐다. 학과는 물론 동아리에서도 주점이니 전시니 축제 준비에 들어갈 텐데, 쓸데없이 성격 좋고 거절을 모르는 파커는 축제 기간 내내 행사 부스에 발이 묶여버릴 가능성이 다분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마찬가지였기에 그것은 두루뭉술한 예상이 아닌 경험에 의한 추론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파커는 축제의 첫날 학과 주점에 붙들려 계산과 서빙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둘째 날에는 하루 동일 동아리 전시의 입장과 안내를 도맡았다. 그러는 동안 피터는 언제쯤 파커의 일이 끝날까 안절부절못하며 홀로 대학 내를 어슬렁거려야 했다. 해리의 1학년 축제 때 모습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꼬락서니였다.
다행히 축제의 마지막 날에는 파커도 피터와 어울릴 시간을 낼 수 있었지만 그래봤자 보잘것없는 대학 축제가 아니던가. 생애 첫 대학 축제를 맞이하는 피터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파커에게는 벌써 몇 년째 되풀이되어 이제는 지겹기만 할 행사였다. 해리는 기꺼이 피터가 축제 기간의 파커를 독점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대신 그는 축제를 총괄하는 진행 위원에 지원했고 그중에서도 마지막 날을 장식할 이벤트 접수 담당을 택했다. 피터가 파커의 손을 잡아끌면서 학과 부스를 돌아다니는 것은 용납할 수 있었지만 단 한 가지, 커플 이벤트를 빌미로 파커를 품에 안거나 몸을 밀착시키는 꼴은―오래 안고 버티기나 풍선 터트리기는 커플 이벤트의 단골 소재였다.―두고 볼 수 없었다. 게다가 그 모든 것들을 차치하더라도 우승 상품으로 걸린 '디즈니랜드 전 구역 자유이용권 2인 티켓'이 피터의 손에 들어가는 일만큼은 절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었다.
해리에게 피터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었다. 본래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는 파커의 시선에 훌쩍 들어왔을 정도로 만만찮은 녀석이다. 신입생 대면식을 다녀온 파커가 그에 대해 긍정적인 말을 꺼냈을 때부터 불안하던 예감은, 파커를 따라 쪼르르 동아리에 들어온 피터를 보고 완벽하게 적중하고야 말았다. 성격인지 혹은 계산인지 모르겠지만 피터는 상대방의 벽을 허물어트리는데 너무나 능숙했다. 특히나 그 대상이 둔감하기 짝이 없는 파커라면 더더욱 간단하다. 피터가 파커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모습은 어느새 공과대의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같은 남자끼리 어색할 법도 한데, 피터는 아무렇지도 않게 파커의 손을 잡고 걸었고 대화를 할 때는 어깨가 닿도록 몸을 기울였으며 술자리의 취기를 핑계 삼아 가슴팍에 꾸벅거리는 고개를 기대기도 했다.
그나마 파커의 십여 년 지기 친구인 해리에게 비할 바는 아니어서, 일상적으로 파커의 허리를 감싸 안곤 하는 해리와 달리 아직 그의 스킨쉽에는 약간의 퍼스널 플래이스가 남아 있었지만 그마저도 언제 사라질지 시간문제였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버리는 피터의 성향 상, 단둘이 디즈니랜드를 다녀오는 일을 용인했다가는 과연 그 후로 어떤 꼴을 보게 될지 두렵기까지 했다. 어쩌면 더는 피터의 스킨쉽에 핑계거리가 필요하지 않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얘기 끝났으면 그만 가라. 다른 애들이 기다리잖아.”
해리가 무성의하게 손을 휘적였다. 파커가 이런 유치한 커플 놀음 같은 이벤트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질 리가 없으니 피터가 포기한다면 깔끔하게 끝날 일이다. 두 사람이 끈질긴 실랑이를 하는 동안에도 파커는 말 한마디 없이 그저 접수대에 쓰인 이벤트 규칙과 상품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피터와, 어쩐지 기분이 좋아보이는 해리와, 우승 상품으로 내걸린 '디즈니랜드 2인 자유이용권'을 번갈아 보았다. 피터가 출구 방향으로 파커의 손을 잡아끌었지만 그는 순순히 발길을 돌리는 대신 해리에게 물었다.
“키스면 돼?”
“어, 어?”
선뜻 질문을 내뱉는 멀건 얼굴은 너무나도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기에 해리는 그다음 일어날 일에 대해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그것은 피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파커의 두 손이 피터의 양 뺨을 붙잡았고, 미처 해리가 저지할 새도 없이 끌어당기며 살짝 고개를 젖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가 좁혀졌다. 입술이 닿는 동시에 피터의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몸이 휘청거렸다. 맞닿은 입술이 떨어질 것 같았는지 파커는 더욱 힘을 주어 피터의 뺨을 붙잡아 겹친 입술을 꾹 눌렀고 심지어 살짝 문지르기까지 했다. 굳게 다문 입술끼리의 부비적거림은 조금도 야하거나 섹시하지 않았으나 피터와 해리를 충격에 빠트리기에는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키스는 그리 길지 않았다. 사실, 키스라기보다는 박치기라는 표현에 더욱 가까울 행위였다. 얼굴이 떨어지고도 피터는 입이 얼얼한 감각을 느꼈지만 그것이 파커에게 입술을 짓눌린 아픔 때문인지, 혹은 입술이 닿았다는 설렘 때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마냥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넋이 나가버린 피터를 대신해 파커가 해리에게 쫙 펼친 손을 내밀었다.
“이제 번호표 줘.”
그러나 해리라고 해서 피터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몰골이었다. 경악으로 부릅뜬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해 흔들렸고 멍청하게 벌어진 입은 닫힐 줄 몰랐다. 정작 일을 저지른 파커는 그런 해리의 반응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한 번 해리를 재촉했다.
“해리, 번호표!”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조금도 갈무리하지 못한 채 단순히 파커의 목소리에 반응하듯, 해리가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참가 번호가 적힌 명찰이 테이블에서부터 파커의 손 위로 옮겨졌다. 삐그덕 삐그덕 움직여 파커의 손바닥에 툭. 명찰을 떨어트리는 동작이 마치 인형 뽑기 박스의 집게 마냥 기계적이기 짝이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침내 필요한 물건을 손에 넣은 파커는 해리를 뒤로하고 목석처럼 굳어버린 피터의 손을 잡아당겼다. 초점을 잃은 해리의 시선이 무대 뒤쪽으로 질질 끌려가는 피터의 뒤통수에 따라붙었다. 그 둘의 뒤에 서서 접수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한 커플의 속삭임이 해리의 귀에 날아와 꽂혔다. 진짜로 사귀나봐. 그 한 마디가 해리의 정신을 더더욱 깊은 무저갱 속으로 처박았다. 역시 그놈을 처음 봤을 때 동아리실 밖으로 내던져야 했노라고, 이제 와서 생각해보았자 너무나 때늦은 후회였다.
한편 피터는 무대 뒤에 들어온 파커가 그의 가슴팍에 번호표를 달아줄 때가 되어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완전히 멀쩡해졌다는 뜻은 아니었다. 건조하지만 말랑했던 입술의 감촉을 떠올리자 피터의 목덜미는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가슴의 심장 소리는 마치 터질 것처럼 쿵쾅거렸다. 피터는 자신의 옷에 번호표 뒤에 부착된 옷핀을 조심스레 꼽고 있는 파커의 동그란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방금 일어난 일은 차라리 망상이었다고 하는 편이 납득이 쉬울 만큼 꿈같은 일이었지만, 그 꼬장꼬장한 해리의 방해를 넘어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현실이었다는 뜻이다.
대체 왜? 피터의 머릿속으로 온갖 의문이 휘몰아쳤다. 대면식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파커를 마음에 둔 것도 맞았고, 내심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은근슬쩍 치댄 것도 맞다. 하지만 동시에, 오히려 주변에서 더 빨리 눈치챌 정도로 점점 더 노골적이 되어버린 피터의 대시를 정작 파커는 전혀 알지 못했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 해리 오스본 마저도 미처 관계를 진전시키지 못해 십 년이 넘도록 친구 사이로만 지내고 있는 파커가 아니던가. 마음은 컸지만 너무 성급하게 굴지 않으려 했다. 해리의 우려와는 달리 피터는 설령 이벤트에 우승해 정말 파커와 단둘이 디즈니랜드를 가게 되더라도 고백할 생각 따위는 일절 없었다. 파커의 페이스에 맞추지 않고 제 마음만 들이댔다간 오히려 해리에게 좋은 꼴이 되어버릴 테니까.
하지만 의외로 자신의 연애 전선은 생각보다 훨씬 순조로울지도 모르겠다는 근거 있는 희망이 샘솟았다. 어쩌면 그는 이미 피터의 마음을 전부 눈치채고 있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제아무리 주변에 무심한 파커라지만 대학 생활을 하다 보면 공과대에 암암리에 돌고 있는─쟤네 혹시 사귄대?─소문을 듣지 못 할 수가 없으리라. 생각해보면, 해리도 그렇다. 십 년이나 관계를 진전시키지 못했다는 건 파커가 상대의 마음에 둔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해리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거 아닌가? 밖에 있는 해리가 알기라도 한다면 당장에 무대를 뛰어 올라와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멱살을 잡을 법한 생각이었다.
마침내 피터의 옷에 만족스러울 만큼 번듯한 모양으로 번호표를 다는데 성공했는지, 파커는 그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려주고서 몸을 떨어트렸다. 번호표를 다는 내내 분명 피터의 요란스러운 심장박동을 들었을 것이다. 디즈니랜드는 커녕 무대 뒤에 마련된 자그맣고 지저분한 대기 공간은 분위기를 잡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지만, 도저히 조금 전의 키스를 덮어버리고 끝낼 수는 없었다. 피터는 전에 없던 확신을 느꼈다. 이건 기회였다. 마침내 용기를 낸 피터가 질끈 눈을 감으며 말했다.
“형, 아까… 조금 전에 그거 말인데요…!”
“우승 상품, 디즈니 2인 이용권이더라.”
그러나 피터가 미처 그 의미를 묻기도 전에 파커가 말꼬리를 잡아챘다. 살그머니 눈을 뜨자 마주친 얼굴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예뻤고, 무심했으며, 눈치가 없었다. 파커가 산뜻하게 웃으면서 물었다.
“같이 가고 싶은 여자애라도 있는 거야?”
순식간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태연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줄줄 이어지는 말들이 피터의 귓가에서 점점 더 멀어졌다. 해리가 그런 심술을 부릴 줄은 몰랐어. 혹시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서 장난 친걸까? 나라도 도와주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네가 좋아하는 애한테는 꼭 비밀로 해야겠다.
피터는 그 짧은 사이에 해리가 지나온 십 여년의 시간과 좌절을 체감했고, 자기 자신과 해리를 향해 순수하고도 진심 어린 동정을 표했다. 어느새 바깥쪽에서는 사회자가 그들의 참가 번호를 부르고 있었지만 피터는 자신을 잡아당기는 손길에도 불구하고 차마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디즈니랜드 자유이용권이 이제는 아주 덧없고 쓸모없게 느껴졌다. 고작 놀이동산 따위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옆에 해리가 있었다면,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동질감을 담아 피터의 어깨를 두드려주었을 것이다. 물론 그 다음에는 저도 모르는 파커의 감촉을 맛본 입술을 뽑아버리려 들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