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3(어메이징 스파이더맨::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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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2(샘레이미 스파이더맨::파커)
제 아무리 날씨가 더워져도 파커의 옷은 얇아질지언정 결코 짧아지는 일이 없었다. 머리 위를 내리쬐는 햇볕이 유난히 더 강렬해지면 파커는 웃옷의 앞섶을 죽 잡아당겨 팔랑이거나 손수건으로 연신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쳤다. 덕분에 파커의 여름 옷은 새로 사고도 얼마 지나지 않아 목 근처가 후줄근하게 늘어나기 일쑤였지만, 그는 고집스럽게도 긴팔만을 고수했다. 그렇다고 소매를 접어 올리는 것도 아닌지라 파커에게 여름이란 특히 더 힘겨운 계절이었다.
겨울이면 코스튬 위에 두툼한 점퍼를 껴입고도 감기에 걸리곤 하는 피터와는 정 반대였다. 피터 역시 긴 옷으로 손목을 웹슈터를 가리는 일이 종종 있었으나, 더위가 극에 달할 때면 그마저도 풀러놓고 반팔로 타협하기 일쑤였거늘 파커는 손목이 노출되는 일에 더욱 민감하게 굴었다.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따로 웹슈터를 탈착하지 않는 파커의 경우 손목 그 자체가 치명적인 약점이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거미줄을 배출하는 손목의 피부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묘하게 다른 구석이 있었고, 마치 그물을 덮은 것마냥 하얗게 퍼진 피부 껍질의 한가운데에 희미하게 갈라진 틈새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도록 만들기 충분했다. 관심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파커에게는 아주 성가신 일이었을 뿐더러 적당한 변명거리를 생각하기도 번거로운 일인지라 파커는 아예 손목을 노출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몸에서 거미줄을 뽑아내는 건 오직 파커 뿐임을 모두가 알게 되었을 때 피터는 그의 손목에 지대한 호기심을 보였으나 피터에게조차 피터에게 조차 손목을 내보이기를 꺼렸다. 같은 스파이더맨이니만큼 약점이 노출된다는 불안감은 아니었고, 그 시선에 동물원 원숭이를 보는 듯한 무례함이 없다는 것도 알았으나 설명하기 어려운 거부감이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오히려 훤히 드러내놓고 다니는, 결코 치부라고 표현할 수 없는 부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꽁꽁 감추기만 했기 때문일까. 마치 함부로 보일 수 없는 은밀한 부위를 노출시키는 것만 같은 부끄러움이 있었다. 궁금증을 그냥 넘기지 않는 피터의 성화를 이기지 못해 결국 소매를 걷어 올리고 팔을 내밀었던 행동이 파커에게는 얼마나 큰 각오를 필요로 했었는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처음 만져본 손목의 피부는 보기보다 더 얇았고 예민하기 짝이 없었다. 구멍 근처를 꾹 누른 엄지가 거죽을 살살 문지르면 손아귀에 잡힌 얇은 손목을 움찔거렸다. 파커의 손목은 피터의 커다란 손이 감아 쥐면 손가락 한 마디가 족히 남을 만큼 가늘었다. 그 때문일까. 결코 연약할리 없는 스파이더맨의 신체임에도 불구하고 손목을 만지작거리는 피터의 손속은 퍽 조심스러우면서 은밀했다. 그 은근하 손동작이 오히려 더 부담스럽다는 듯 피터에게 붙잡힌 내내 파커는 긴장한 주먹을 꼭 움켜쥐고 있었다. 고요한 가운데 긴장감을 나타내듯 빠르게 오르내리는 숨소리에 자꾸만 신경을 빼앗겨서 피터는 그만 뭉툭한 손가락 끝으로 구멍 위를 짓눌렀다. 손톱이 그 위에 붉은 자국을 남기기가 무섭게 파커는 황급히 손을 뿌리치고서 소매를 끌어내렸다. 그때였다. 쉽게 당황하는 일 없이 초연하기만 하던 얼굴에 난처함이 깃들고, 새빨갛게 달아오른 목덜미를 보게된 것은. 그리고 하얀 캔버스에 붉은 물감을 푼 듯이 덩달아 상기된 뺨이 무심코 예쁘다고 생각해 버린 것은 말이다.
그 후로 다시 소매 안에 감춰진 손목이 쉽게 드러나는 법이 없었기에, 피터가 두 번째로 파커의 손목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두 사람의 관계는 변환점을 맞았다. 피터는 손목뿐만 아니라 파커의 몸 곳곳을 만지고, 쓰다듬고, 입술을 문댔다. 이를 세워 무방비하게 드러난 손목을 잘근거리면 달콤했던 신음은 한층 더 농염해졌다. 피터가 아무리 손목을 누르고 깨물며 집요하게 자극해도 이제 파커는 그곳을 가리거나 뿌리치지 않았다. 호기심은 욕망으로 변한지 오래였다. 그 욕망이 충족되도록 마음껏 손목을 유린한 덕분에 첫 관계가 끝났을 때에는 아래쪽 만큼이나 양손목 역시도 엉망이었다. 거미줄이라고 할 만한 형상조차 갖추지 못하고 새어나온 체액이 손목 아래로 흘러내려 팔을 휘감듯 달라붙었다. 파커는 "이런 적은 처음인데." 라고 말하면서 이불 속에 팔을 밀어넣고 민망하게 웃었다. 피터는 이불 아래에서 팔을 쓰다듬었고 파커의 귓가가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더 몸을 섞으면서, 그때마다 피터는 파커의 손목에 입을 맞추었다. 손목 위로 떨어지는 입술에는 경애를, 파커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열애을 담아 여린 살갗을 살며시 깨물었다. 손목을 타고 전해지는 짜릿한 아픔은 아래로부터 치고 올라오는 쾌락과 뒤섞였다. 타액을 머금어 미끈거리는 혀가 예민해진 손목을 핥으면 말캉한 살덩이 아래에서 거미줄이 녹아내렸다. 질척해진 손목을 덮은 입술이 구멍을 빨아들이는 감각은 짙은 사정감과 함께 파커의 머릿속에 선명한 각인을 남겼다. 절정의 순간 늘 파커의 손목에는 녹진한 체액이 정액처럼 흘러내렸다.
여전히 파커는 여름에도 긴 옷을 입었다. 다만 이제는 피터가 다가와 소매 아래로 슬쩍 손가락을 집어 넣으면, 놀란 어깨를 움츠리면서도 더욱 수월하게 소매를 밀어 올릴수 있도록 팔을 들었다. 여름에도 햇볕을 받지 않아 하얗기만 한 손목을 입술로 내리 누르면 순식간에 퍼져버린 열기가 흰 피부를 붉게 물들였다. 그건 일종의 신호와도 같았다. 그러면 파커는 저릿저릿해진 손목을 피터의 목에 두르고 기꺼이 입술을 겹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