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가필드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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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 맥과이어
루비와 오티스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모처럼 화창한 낮 시간에 바로 집에 돌아가기 아쉬웠던 토비는 레오에게 연락을 했다. 다행히 그 역시 시간이 남는 참이었는지 레오는 선뜻 토비의 권유에 응했다. 둘은 루비와 오티스를 데리고 곧잘 방문하곤 하던 브런치 카페의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실로 오랜만에 맞이하는 단 둘만의 한가로운 시간이었다.
레오는 작은 미트파이와 블랙커피 주문했고, 토비는 칠리 베이크빈이 듬뿍 들어간 비건 핫도그와 귀리 밀크를 골랐다. 별것 아닌 사소한 영화계 소식들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몇 가지 근황들, 쓸데없는 잡담과 농담들이 오갔다. 그 중 헐리우드에 흔하게 떠돌고는 하는 멍청한 소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레오가 퍼뜩 떠올랐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너에 대한 소문이 돌 뻔 했나봐. 워낙 근거없는 소리라 타블로이드에서도 무시한 것 같지만.”
토비는 대수롭지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나름대로 높은 인지도를 가진 배우 치고 공백기가 길었던 탓에 한동안은 헐리우드 찌라시에 시달릴 일도 없었지만, 대형 프랜차이즈 영화에 출연한 이상 또 다시 파파라치와 타블로이드의 먹잇감이 되리라는 것쯤은 각오했던 일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최근 몇년 동안 가장 거대한 상업영화로서 몸집을 불리고있는 마블 유니버스에, 그것도 그를 유명해지도록 만들어 주었던 스파이더맨으로서의 재출연이다. 영화가 개봉한 이후 두 스파이더맨의 복귀는 가장 핫한 뉴스 중 하나였고 그만큼 찌라시도 늘어났다. 사소한 헛소문에 일일히 대응하기에는 토비는 헐리우드의 관심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 잘 알았다. 레오 역시 토비의 그런 무심한 반응을 예상했는지 피식 웃었다.
“그래, 말도 안돼는 소리야. 네가 앤드류 가필드와 스캔들이라니.”
“뭐?”
막 핫도그를 입으로 가져가려 하던 토비가 먹는 것을 멈추고서 반문했다. 묘하게 찡그린 미간은 불쾌감을 나타내는 것 처럼 보였다. 레오는 토비의 기분을 충분히 이해한다는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이가 없겠지. 기사라기에는 차라리 팬픽션에 아까울 법한 그 얼토당토않은 발언의 근원은 익명의 SNS였는데, 고작 그 몇 줄의 트윗을 위해 새로 만든 계정으로 보였다. 해당 계정의 말에 따르면 본인은 LA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셀러브리티의 사적 만남을 위한 프라이빗 펍에서 일하는 직원이며 자신이 일하는 가게에 앤드류 가필드와 토비 맥과이어가 방문했다는 것이다. 무려 앤드류가 행사 차 LA에 도착했다는 보도가 나왔던 바로 그 날 당일 저녁에!
다만 그 발언이 타블로이드에서 조차 신뢰를 얻을 수 없었던 이유는 계정 주인이 자신의 신분을 철저하게 감추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한들 단순히 방문했다는 사실에서 그쳤다면 어디 한 번 뒤를 캐보려는 시도를 하는 연예부 언론이 있었을 런지도 모르겠지만, 그 익명의 계정이 너무 나아가버린 것이 문제였다. 그는 두 사람이 떠난 후 룸에 남은 흔적으로 유추하건대 그 안에서 관계가 있었던 것이 틀림 없다고 주장했다. 흥미를 부추길 뻔 했던 제보가 순식간에 팬들의 머릿속에서 나올 법한 망상으로 전락해버린 가장 큰 이유였다. SNS보다는 AO3에 쓰는 것이 어울릴 법한 소리를 해놓고서 정작 본인은 익명성을 지켜주겠다는 연예계 기자의 접근까지 마다해서야 소설로 치부되어 무시당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앤드류 가필드라니. 레오가 다시 한 번 중얼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비록 함께 일한 적은 없지만 한창 활발하게 커리어를 쌓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번 영화로 인해 토비에게도 몇 번 이야기를 들은지라 레오 역시 모를 리 없는 배우였다. 어쩌면 행사에서 스치듯 마주친 적도 있을지 모른다. 그가 훌륭한 연기자이며 잘생긴 미남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할 수 있었지만 어쩌다 그와 토비를 상대로 그런 노골적인 연애 찌라시 따위를 생산해볼 생각을 했는지 황당할 따름이었다. 가쉽을 만들어 이미지를 깎아내리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캐릭터 사이의 케미를 배우와 동일시하는 팬걸의 바람이었을까? 앤드류고 토비고 배우 생활 내내 단 한번도 게이 의혹을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후자의 가능성이 더 높아 보였다.
“아, 정말 곤란하게 됐네.”
토비가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반절도 채 먹지 않은 핫도그마저 내려놓고 생각에 잠긴 기색이라 레오는 조금 놀랐다. 문제의 익명 계정은 비난과 검증 요구가 쏟아지자 고작 하루 만에 사라져 버렸기에 해당 발언은 빠르게 묻혀버렸다. 배우에게 그 정도의 자그마한 해프닝은 농담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보잘것 없는 사건이었다.
레오는 타블로이드의 도박과 소송 문제에 대한 보도로 인해 토비가 꽤 오랫동안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던 일을 상기했다. 악의적인 비방과 루머는 언제나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처음에는 무시해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어느새 몸집을 키워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스노우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타블로이드는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은 거짓을 교묘하게 포장하고 편집해 진실로 만드는 일에 놀라울 만큼의 재주를 발휘하곤 한다. 토비가 스파이더맨으로 갑작스러운 인지도를 얻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인성 논란을 만들어 내었듯이 말이다.
뒤늦게서야 토비에게는 가볍게 이야기할 만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솔하긴. 스스로를 향해 내심 혀를 차면서 이미 어두워져버린 토비의 안색을 살폈다. 한편으로는 이 문제 중 과연 어느 것이 그의 기분을 가장 불쾌하게 만들고 있는지 궁금했다. 상대가 앤드류 가필드라는 점일까? 아니면 게이 의혹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사실 자체일까? 레오가 지금까지 겪어온 토비는 분명한 헤테로였지만, 그는 가까이에 게이 친구를 두기도 했던 만큼 성적 지향에 편견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이유로든 쉽게 타인에게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도 아니다. 그래, 그냥 함부로 입을 놀리는 것들이 싫은 거겠지. 레오가 황급히 토비를 달랬다.
“괜찮아, 토비. 관심도 못 받고 폭파된 계정이야. 기사화 된 것도 없고, 나도 우연히 알았어.”
“그렇다면 다행이긴 하지만…”
한결 풀어진 표정을 보고 가슴을 쓸어 내리려는 찰나 토비가 중얼거렸다.
“거기 직원들은 입이 무거운 줄 알았는데 말야.”
“…음?”
토비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애써 웃으려던 레오의 입꼬리가 살짝 떨렸다. 그 말은 마치, 익명 계정의 주장이 전부 사실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설마 그럴리가. 레오는 머릿속으로 떠오른 얼토당토하지 않은 생각을 애써 털어내었다. 본래 거짓에는 교묘한 진실이 숨겨져 있듯이, 익명의 계정은 단순히 앤드류와 토비가 만난 것을 목격했을 뿐일런지도 모른다. 그래, 영화 개봉 당일 날 둘이 함께 극장에 숨어들었던 일처럼 말이다. 그것도 비밀스럽다면 비밀스러운 만남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 프라이빗 펍이라고 해서 무조건 그렇고 그런 밀회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혹시 모를 파파라치와 기자의 눈을 피하기 위한 장소일 뿐이니까. 그렇기에 진행 과정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싶어하는 영화 프로젝트의 미팅 장소로도 이용되지 않던가.
레오는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가필드를 만났어?”
“응. 믿을 만한 곳이라고 했는데, 앤디에게 미안해지잖아.”
애칭을 불러? 반사적으로 높아진 언성이 튀어나올뻔 했지만 레오는 가까스로 그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30년지기에 비하면 알게 된 시간은 터무니없이 짧지만 어쨌든 그들은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고, 같은 영화를 촬영한 사이였다. 함께 캐릭터에 몰입한다는 것은 배우를 빠른 속도로 친해지게 만든다. 연인 사이를 연기한 두 주연 배우가 실제로도 사랑에 빠지는 일은 헐리우드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건 중 하나였다. 하물며 그들의 작품 내적인 관계성을 생각한다면, 짧지만은 않았던 촬영 기간 동안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게 되는 정도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레오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한 번 물었다. 고작 지레짐작 만으로 멍청해질 수는 없었다.
“많이 가까워졌나보네. 굳이 그 시간에, LA에 도착하자 마자 제일 먼저 널 만나다니.”
“그렇지.”
토비가 기분 좋게 웃었다. 레오는 그 미소에서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왠지 입이 바싹 타들어가는 것만 같아 남아있는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얼음이 가득 든 아이스 커피의 냉기가 올라와 띵하니 골이 울렸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더욱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런데 왜 하필 그런 곳에서 만났어? 이제는 굳이 몰래 만날 필요도 없잖아.”
이제 새로 개봉한 스파이더맨 영화에 두 사람이 출연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대답을 해주는 대신 저를 빤히 바라보는 토비의 시선을 마주하면서 안쪽으로부터 치고 올라오는 술렁임을 느꼈다. 레오는 조금 전 보았던 토비의 미소를 떠올렸고, 마치 뻔한 것을 묻는다는 듯 깜박이는 새파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무려 30년, 정확히는 30년도 넘는 시간 동안 레오는 늘 토비의 모습을 쫓았다. 그의 표정과 눈짓, 행동거지 등 토비에 대해서라면 무엇 하나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이 없는데도 레오는 여전히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사생활이라지만, 괜한 오해까지 받아가면서…”
레오는 진심으로 토비에게서 '그렇네.' 라는 대답이 나오기를 바랬다. 그러나 토비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테이블을 톡 톡 두드리며 데록데록 눈을 굴렸다. 마침내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더니 꾹 다물고있던 입매를 끌어올렸다.
“좋아, 너에게는 말해도 괜찮겠지.”
“무슨 뜻이야?”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몰라도 의미심장하게 웃음 짓는 미소를 마주하자 그 얼굴이 예쁘다는 생각을 하는 한편, 애써 떨쳐내려 했던 불안감이 또다시 비죽 솟아올랐다. 토비가 웃음에 인색한 사람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었지만 평소에는 보기 힘들 정도로 유난히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는 기시감마저 느껴졌다. 적어도 그것은 단순히 '친한 사람'을 말할 때 짓는 표정은 아니었다. 레오는 토비의 그런 웃음을 본 기억이 있었다. 이제는 부정할 수도 없는 그것은 종종 레오에게 보여주되, 레오를 위한 것은 아니었던, 사랑에 빠진 얼굴이다. 레오는 자신이 듣게 될 말을 직감했다. 어쩌면 조금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을런지도 모르는 그 말은, 결국 레오에게 도망갈 틈을 주지 않고 날아들고 말았다.
“앤디와 사귀고 있어.”
레오의 입매가 딱딱하게 굳었다.
“프라이빗 펍도… 오랜만에 만났는데, 호텔은 너무 눈에 띄잖아. 단 둘이 있을 곳이 필요했다고.”
그렇게 말하는 토비의 얼굴은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햇병아리 마냥 수줍게 손만 잡는 나이는 한참 전에 지났으니만큼 토비의 말 속에 숨겨진 의미를 깨닫기는 아주 쉬웠다. 예의 익명 계정을 헛소리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마지막 트윗에 머릿속에 맴돌았다. 룸에 남은 흔적을 보건대 그 안에서─… 비단 한번에 들이킨 아이스커피 때문이 아니더라도 띵하니 머리가 울렸지만 레오는 간신히 입꼬리를 올렸다. 자신의 속내를 숨겨야 했던 시간 동안 레오는 토비의 곁에서 그의 연애사를 지켜본 전적이 있었다. 사랑에 빠진 얼굴을 보는 것도, 그의 사랑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그러면서 형식적인 축하를 해주는 것도 레오에게는 질리도록 반복되어 무뎌진 일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오티스의 대부까지 서 주었는데 이 정도 쯤이야.
“그거 참… 축하해, 토비.”
“고마워.”
레오의 입매가 떨렸다. 안타깝게도, 이번 사건은 단 하나의 예외 사항을 가지고 있는 만큼 레오에게도 처음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렇기에 도무지 무뎌질 수가 없었다. …남자랑 만난 적은 없었잖아! 헤테로라고만 믿고 감히 속마음을 내비치지도 못한 채 지나간 외사랑의 세월이 한없이 한심하고도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수줍게 웃으며 대답하는 토비는 여전히 사랑스럽기만 해서 울분이 치솟았다. 남자여도 괜찮았던 거냐고 비겁하게 따지고 들 생각은 조금도 없었지만 그렇다면 왜 나는 단 한번도 알아차려 주지 못했는지 치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왠지 너한테 만큼은 말하게 될 것 같았어.”
레오의 마음이 어떻던간에, 가장 큰 비밀을 털어놓고 제법 홀가분해졌는지 안도감마저 느껴지는 목소리는 부드럽고 편안하게 들렸다.
“넌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