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가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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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 맥과이어


잠자리에 들기 직전의 한 시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하루 중에서, 앤드류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었으며 그 때 만큼은 시간이 다르게 흐르기라도 하는 양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한 시간이었다. 바쁜 하루의 일과를 모두 끝마치고 드디어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을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찾아오면 앤드류는 침대에 누워 머리 위의 보조등을 켜고 핸드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일과 시간 내내 핸드폰을 붙들고 살지 않는지라 문자 메시지에는 야박한 토비였으나─앤드류 역시 그랬지만, 토비는 특히 더했다.─하루의 끝을 알리는 전화벨 소리만큼은 설령 시간이 너무 늦어지거나 시차가 바뀌어도 반드시 반응해 주었다. 낮에 미리 문자로 전화 시간을 알린다지만 매번 때를 달리하는 전화가 불편할 법도 한데, 토비는 늘 한결같은 목소리로 앤드류를 반겨주었다.

국제 전화를 알리는 지루한 통화 연결음이 끝나고 마침내 토비가 전화를 받으면 하루의 피곤함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한 달이 넘도록 만나지 못한 연인를 향한 그리움과 그를 달래는 달콤한 목소리만이 남는다. 앤드류는 세상에서 제일 짧은 한 시간 동안 조잘조잘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오늘은 무슨 행사가 있었고, 누구를 만났고, 어떤 인터뷰를 했고 앤드류에 비하면 토비는 그리 수다스러운 편은 아니었지만 간간히 들리는 웃음소리나 감탄 섞인 추임새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앤드류의 말에 집중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다 보면, 마지막은 늘 똑같은 말로 끝나곤 한다. 보고싶어요. 노웨이홈 이후로 또 다시 휴식기에 들어가 버린 토비와는 달리 앤드류는 한창 커리어의 황금기를 지나는 중이었다. 가끔은 앤드류의 전화보다 인터넷 기사를 통해 그의 근황을 더 빨리 알아버릴 정도로, 앤드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바빴다. 넷플릭스 영화로 인한 일정이 전부 정리되고 나면 그 다음은 곧 공개를 앞둔 드라마 홍보 차례였고, 작품 홍보 외에도 연초에는 온갖 종류의 시상식과 행사가 있다. 앤드류는 그 모든 것들이 정리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본래 배우라는 것이 본격적인 영화 촬영에 들어가면 수 개월간 가족 조차 만나기 어려워지기도 한다지만, 앤드류가 난생 처음 겪어보는 장거리 연애는 그에게 초조함과 안달감을 남겼다.

"나도 당신이랑 여행하고 싶었는데!"

앤드류가 한탄 섞인 투정을 부렸다. 토비와 레오의 마리아나 행이 알려진 이후 앤드류는 매일같이 이 말을 했다. 물론 단순한 유흥 여행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으나 하필이면 상대가 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는 점이 문제였다. 사실, 토비의 모든 일상에는 언제나 레오가 있었다. 토비 맥과이어에게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둘의 관계가 얼마나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는지 모를 수는 없으리라. 앤드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 연인은 아닐지 언정 단순히 친구라는 단어만으로는 표현될 수 없는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도 알고, 그렇다고 해서 질투를 한다는건 아주 유치한 짓이라는 것도 알지만 앤드류가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면서 한 가지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면 자신은 생각보다 유치한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레오는 그냥 친구래도."

토비가 웃음기가 섞인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토비와의 연애는 앤드류를 마치 처음 사랑에 빠진 햇병아리처럼 만들었다. 장거리이기 때문일까, 혹은 연상이기 때문일까. 혹은 앤드류의 삶에서 유난히 더 특별한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그 역시 앞으로 몇 년이면 중년에 접어드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토비와 통화를 할 때면 어린 청년이 되어버리는 기분마저 들었다. 나이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여서, 토비에게는 평생을 가도 연하라는 점이 못내 분한 만큼 어리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는 않았으나 레오나르도가 관련되는 일에서 만큼은 아이 같은 속내를 완전히 감추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항상 식사도 같이하고, 파티도 하고, 경기장도 가는데다 오티스나 루비랑 놀아주기도 하고"

은근히 담아 놓은 것들이 많았던 걸까. 평소와 비슷하게 금방 끝날 줄 알았던 볼멘 소리가 이토록 구구절절 늘어질 줄은 생각도 못했다. 말이 길어질 수록 앤드류의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졌다. 막상 입 밖으로 꺼내 놓고 나니 자신의 언행이 치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말하고 보니 정말로 그가 토비의 모든 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 탓이기도 했다. 토비는 앤드류가 LA에 오는대로 제일 먼저 오티스와 루비를 소개해 주겠노라 약속했지만 토비의 연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들은 아직 앤드류의 얼굴 조차 몰랐다. 누군가가 레오와 앤드류를 두고, 레오가 더 연인 답지 않느냐고 말한다면 앤드류에게는 반박할 수 있는 구실 조차도 없었다.

"미안해요. 그냥, 당신 얼굴을 너무 오래 못 봐서 정신이 나갔나 봐요."

전화 너머로 아무런 말이 없자 앤드류는 보이지도 않을 손사래를 치며 얼른 변명을 했다. 짐짓 풀이 죽었던 목소리를 한껏 끌어올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쾌활함을 가장했다. 평소에도 토비를 만나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곧잘 토로하긴 했었지만 이번에는 지나치게 불필요한 소리까지 해버렸다는 자각이 있었다. 그야, 드물게나마 토비의 파파라치 사진이 떴다 하면 그 옆에는 늘 같은 사람이 있으니까. 그러나 자신의 문제로 토비를 불편하게 만들기는 싫었고 행여라도 토비에게 부채감을 주는건 더 싫었다. 앤드류는 일부러 발랄한 목소리를 내면서 화제를 돌리려 했다. 내일은 또 비행기를 타야 해요! 시차가 더 벌어질 텐데─

"앤드류."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리자 그만 뜨끔 하고야 말았다. 앤드류는 불안하게 귓불을 만지작거리면서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어떤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으로는 결코 재단할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기도 한다. 토비에게는 레오가 그런 사람이었기에, 연인이라 한들 고작 1년도 채 되지 못한데다 얼굴도 거의 비추지 않는 앤드류가 함부로 언급할 상대는 아니었다.

다행히도 딱히 화를 내려는 작정은 아니었는지, 혹은 바짝 긴장한 기류를 느끼고 풀어져 버렸는지, 토비가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금방이라도 뚝 떨어질 것만 같았던 심장 박동이 한결 느슨해졌다. 앤드류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그 순간 전화 스피커를 타고 짧지만 분명한 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쪽.

이번에는 정말로 심장이 뚝 떨어져 버렸다. 물론 불안감과는 전혀 다른 이유였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명확한 의도를 담은 소리 너머로 토비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새부리처럼 뾰족하게 모은 입술을 꾹 눌렀다가 떨어트리는 키스는 그저 소리만을 전달하고 있었지만, 그 소리에는 말랑말랑한 입술의 감촉이 생생하게 담겨있었다. 마지막 만남 이후 이토록 선명하게 토비를 느껴본 적이 있던가. 약간의 부끄러움을 담은 수줍은 목소리가 귓가에 녹아내려 뺨을 간질이자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입술을 맞대던 때처럼 앤드류의 목덜미가 확 달아올랐다.

"레오랑은 이런거 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