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3(어메이징 스파이더맨::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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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2(샘레이미 스파이더맨::파커)


피터 앤드류 파커는 제 형이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어쩌면 기억하지 못한다는 표현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에게도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시절은 있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어린 동생에게 장난감을 빼앗기거나, 마지막 남은 간식을 채가는 바람에 울음을 터트리던 때의 형을 알지 못했다. 피터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눈물은─단, 그것이 정말 눈물이 맞다면─자신이 다섯살이 채 되기 전에 치뤄진 부모님의 장례식에서였다. 피터는 죽음이라는 것이 더는 만날 수 없다는 의미임을 알았지만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어렸다. 높은 천장이 머리 꼭대기에서 뾰족하게 모아지는 예배당은 어린 피터에게는 너무나 거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좁은 틈새에 갇힌듯 가슴이 답답했다.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초의 심지가 타오르는 매캐한 재의 냄새와, 제단에 놓인 나무관의 톱밥 냄새를 머금은 왁스 냄새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피터의 코끝을 맴돌곤 했다. 

밖에는 비가 왔던가. 애도의 노랫소리는 시커멓게 가라앉은 스테인드글라스를 때리는 빗소리에 짓눌려 불분명했고,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어깨에 내려앉아 낯설기 짝이없는 정장을 한층 더 무겁게 했다. 조문객들은 하나같이 손에 하얀 꽃을 한 송이씩 들고 있었지만 마치 조화라도 되는 양 향기를 맡을 수가 없었다. 한 사람씩 줄지어 관 안에 꽃송이를 던지는 애도의 행렬이 이어질수록 제 손을 더욱 강하게 붙잡던 힘있는 손아귀를 기억했다. 아직은 형의 손이 피터의 작은 손을 전부 감싸쥘 수 있을 정도로 큼지막하던 그 때, 손아귀 안에서 움츠린 손가락이 서로 짓눌리던 감각 역시 기억했다. 그리고 조문객들의 검은 구두코를 쫒던 시선을 들고 올려다 본 제 형의 얼굴만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열 살의 그는 품안에 그 해 태어난 막냇동생을 꼭 끌어안은 채 피터의 손을 쥐고 있었다. 굳게 다문 아랫입술이 잇사이로 살짝 말려들어가 있었는데, 윗니가 입술을 꾹 내리눌러 중심부만 색이 연했다. 떨리는 속눈썹에도 불구하고 부릅뜬 눈 속에서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그의 눈동자는 평소의 투명한 푸른 빛과는 다른 물기를 머금고 있었고, 그것은 예배당 안을 무겁게 짓누르는 습한 비냄새와 닮았으나 결코 흘러내리지 않았다. 

어쩌면 그 순간 피터가 본 눈물은 그저 제단에 놓인 촛불의 반짝임이 반사된 것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피터는 그것이 형의 마지막 눈물이었음을 확신했다. 스테인드 글라스의 그림자가 하얗게 질린 형의 뺨에 비추어져 쏟아지는 빗줄기와 함께 하염없이 떨어져 내렸다. 괜찮아. 그는 어린 피터를 안심시키려는 듯 내려다보며 말했다. 부드럽게 끌어올린 미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림자가 계속해서 얼굴 위를 흘러내렸다. 

그 후로 제 형은 우는 법이 없었다. 갓난 아기인 막내가 울음을 멈추지 않아 답답할 때에도 똑같이 울기보다는 갖은 방법을 찾아내 막내를 달랬고, 부모가 없는 그를 우습게 여긴 동급생들에게 얻어 맞을 때에도 눈물을 보이느니 악착스럽게 버텼다. 그들을 안쓰럽게 여기는 주변 사람들의 동정을 받을 때나, 그럼에도 냉정하게 월세를 요구하는 집주인에게 사정을 할 때면 울분은 언제든 쉽게 치솟았다. 교묘한 술수에 속아 아르바이트 비를 받지 못한 적도 있었고, 피터의 사소한 실수로 인해 고작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학교에 불려가 부모없는 자식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때 조차도 형은 고집스럽게 이를 악물고 코끝과 눈가를 붉게 물들일지 언정, 단 한번도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피터는 형의 그런 얼굴을 보는 것이 싫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차오를 것처럼 벌개진 눈가에는 그 붉은 열기가 수분을 모조리 태워버리기라도 한 것마냥 건조함 뿐이 남지 않는다. 그러면 그는 꼭, 그 붉은기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피터를 보며 눈썹 끝을 살짝 일그러트리고 웃었다. 괜찮아, 피터. 그 말과 함께 차오른 슬픔과 통한은 목구멍 아래로 사라지고, 그렇게 삼킨 울음이 연약한 심장을 짓눌렀으리라. 피터는 그것이 싫었다. 끝끝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메마른 얼굴 만큼이나 그  말도, 웃음도, 목소리도 전부 다 싫었다.

피터는 자신의 욕망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십여년이 넘도록 그렇게 억눌러온 형의 눈물은 피터의 뱃속에 고여 자라났다. 그를 울게 하고 싶었다. 떨리는 속눈썹이 흉하게 일그러지고, 삼키기에는 너무나 큰 괴로움으로 꺽꺽이며 거칠게 토해내기를 원했다. 그 날, 부모님의 장례식장에서 형의 얼굴을 하염없이 쓸어내리던 빗물의 그림자가 기어코 눈물이 되어 흐르는 꼴을 보고 싶었다. 힘겹게 끌어올린 입꼬리와 접힌 눈매를 마주할 때마다 피터는 저에게 보여주는 한결같은 미소를 엉망으로 흐트러트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형이 울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날 미워하면 좋겠다. 마침내 그 한없이 다정하기만 하던 애정을 짓밟은 날, 그는 처음으로 피터에게 웃어주지 않았고 피터는 헛구역질 섞인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는 정말로 섧게 울었다. 몸을 더듬는 손길이 소름끼친다는 듯이 울었고, 목덜미와 귓불을 짓씹는 입질이 고통스럽다는 듯이 울었고, 아래로부터 열기를 지펴 전신을 붉게 물들이는 쾌락이 혐오스럽다는 듯이 울었다. 피터의 손이 피부를 스칠 때마다 울음을 터트리며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몸짓은 마치 오랫동안 원해왔던 것을 갈구하는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들게했다. 그는 목이 형편없이 갈라진 끝에 힘없이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면서도 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항상 흐르지 못하도록 꾹꾹 눌러 담기만 했던 눈동자 속에는 그만큼 많은 눈물이 고여있었기에 그 새파란 빛깔이 사실은 전부 눈물이었던 것처럼 쉴새도 없이 흘렀다. 피터는 그것이 결코 마를 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기에는 지금껏 고이기만 한 것들이 너무나, 너무나도 많았다. 

괴로움을 가득 담은 울부짓음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러운 기쁨이 차올라서 피터는 형을 끌어안고 웃었다. 괜찮아. 그는 우는 대신 늘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단 한 번도 괜찮은 적이 없었다. 그 날로부터 수십, 어쩌면 수백 번을 들었을지도 모르는 짧은 말 속에 미처 흘리지 못한 눈물방울을 감추어 놓으면 피터는 그것을 받아 마시곤 했다. 피터는 제 가슴팍에 고개를 파묻은 형의 뒷머리를 꾹 누르며 말했다. 괜찮아, 형. 지금껏 삼켜온 감정이 그 한 마디와 함께 흘러나와 비로소 해방감을 느꼈다. 피터는 정말로 괜찮았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그의 형 역시 정말로 괜찮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섧어지는 형의 울음소리가, 피터는 너무나 듣기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