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3(어메이징 스파이더맨::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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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2(샘레이미 스파이더맨::파커)
11
피터는 파커의 말을 따라 얌전히 소파에 앉아 눈을 감았다. 창가에 놓인 소파는 한낮의 햇볕이 들어와 자리를 잡는 최적의 장소였다. 파커는 잘 만들어진 섬세한 밀랍인형 마냥 부드러운 뺨을 쓰다듬으면서 피터의 얼굴을 찬찬히 관찰하듯 뜯어보았다. 허벅지 위에 얌전히 올려놓은 손이 움찔대며 참을성 없이 꾹 다문 입술을 달싹이긴 했지만 파커와의 약속 때문인지 용케 미동도 없이 얌전했다. 잘 익은 아몬드처럼 매끈한 브라운빛 눈동자를 볼 수 없는 것은 퍽 유감스럽지만 대신 긴 속눈썹이 곱게 감긴 눈꺼플 위로 내려 앉았다. 파커는 숨을 죽이고 천천히 피터에게 다가갔다. 소파 등받이를 짚으며 몸을 숙이자 반듯하면서도 부드러운 옆선이 시야에 가득 찬다. 바짝 가까워진 나지막한 날숨을 느꼈는지 촘촘한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리며 그 위에 흩뿌려진 햇볕의 금가루가 반짝이자 파커가 속삭였다.
"잠깐, 움직이지 않기로 했잖아."
천진한 웃음이 섞인 목소리가 공기를 진동시키며 뺨을 간질였다. 피터는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지척에서 느껴지는 파커를 마주 보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아냈다. 피터가 다시 얌전해진 것에 만족하며 파커가 몸을 움직였다. 소파의 가죽이 마찰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 분으로 늘어난 무게 만큼 앉은 자리가 푹 가라앉았다. 파커가 허벅지 위에 올라앉자 피터의 길쭉한 키에도 불구하고 수월하게 눈높이를 맞출 수 있었다. 곧게 뻗은 양 팔이 피터의 어깨 위를 지나가고 목덜미 뒤에서 굳게 깍지 낀 손이 뒷머리를 감싸며 부드럽게 끌어 당겼다.
파커의 시선 끝에 긴장이라도 한 것 처럼 피터의 뺨 안쪽이 조금 뻣뻣해지는 모습이 보였다. 보들거리는 머리칼 사이사이에 손가락을 파묻고서 슬머시 웃은 파커가 고개를 기울였다. 파커는 눈을 감지 않고 피터의 날렵한 콧대와 동그란 콧망울, 머리칼과 같이 옅은 갈색 빛이 도는 속눈썹의 떨림을 시야 가득 눌러 담았다. 갑자기 훅 가까워진 존재감을 느꼈는지 짧은 언더래쉬가 움찔거렸지만 손가락으로 허벅지를 톡 두드리자 뜰 뻔 했던 눈을 질끈 감았다.
파커는 천천히, 느릿하게 움직였다. 닿을 듯 말 듯 스치는 입술을 벌리고 느긋하게 혀를 내밀어 꾹 다문 입술 사이를 살그머니 문질렀다. 혀 끝은 보드라운 입술 사이를 파헤쳐 틈새를 비집었다. 파커는 입술 안쪽의 여린 살갗을 느끼면서도 희미한 떨림을 머금은 눈매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토록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던가? 키스를 할 때면 대개 눈을 감는 쪽은 파커였다. 저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곧은 시선으로부터 피어오르는 노골적인 욕망은 늘 파커를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나 저 눈꺼플 안쪽에 어떤 강렬한 열망이 고여 있든간에, 아래를 향해 얌전히 늘어트린 속눈썹의 촘촘한 모양새는 순종적이기만 했다.
예쁘다. 긴 속눈썹 사이 사이에 걸린 따듯한 정오의 햇볕 냄새를 맡으며 파커는 무심코 생각했다. 피터의 얼굴에는 곧고 섬세한 선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어쩌면 미학적이라는 단어는 피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상기된 뺨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햇살은 속눈썹 사이로 쏟아져 눈 밑에 빗금 진 그림자를 드리웠다. 파커는 충동적으로 손을 뻗어 엄지 손가락으로 반짝이는 그림자를 훔쳤다. 속눈썹이 뭉툭한 손톱 아래를 스치는 동시에 말캉한 혀가 서로를 갈구하며 뒤엉켰다.
피터는 여전히 눈을 감고 꼼짝도 하지 않았지만 기다렸다는 듯 얽히는 혀는 파커를 속박하며 혀뿌리를 옭아매었다. 눈꺼플 너머의 시선과 눈이 마주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요하기 짝이 없는 나른함 속에서 솜털을 곤두세우는 짜릿함이 등줄기를 흩었다. 파커는 입을 벌리고, 피터의 아랫입술을 살그머니 깨물었다가, 슬쩍 당기며 떨어졌다. 미끄러진 혀가 유혹하듯 입천장을 흩었다.
몸을 물린 파커가 긴 숨을 토했다. 짐짓 처음과 별다를 것 없어보이는 피터는, 그러나, 한껏 달아오른 목덜미를 추켜세우고서 타액을 머금은 입술을 살짝 벌려 파커를 향해 붉은 혀 끝을 내보이고 있었다.
깍지를 푼 손이 피터의 목덜미를 스치고 어깨를 지나 팔뚝을 쓸어내리며 떨어졌다. 파커는 저 눈꺼플이 열리는 순간 타오르고 있을 열망의 색을 상상하며 나지막히 피터의 이름을 불렀다. "피터." 그 말이 주문이라도 되는 양 피터가 눈을 떴다. 아래로 드리워진 속눈썹이 휘장을 걷어 올리자 마침내 드러난 아몬드색 눈동자가 빛을 반사하듯 반짝였다.
빠르게 다가오는 시선이 눈이 부셔서 파커는 그만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이윽고 다시 닿은 입술을 통해 피터는 파커를 향한 갈망을 아낌 없이 흘려 넣었다. 허공을 더듬던 손이 황급히 피터의 목을 끌어 안고, 녹아든 허리가 위태롭게 흔들려 피터의 팔에 기대었다. 이번에는 도저히 눈을 뜰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후의 볕이 주는 포근함은 어느새 핫핫한 열기로 탈바꿈하여 파커를 흥분하게 했다. 파커는 피터의 머리칼을 헤집으면서 단 숨을 토했다. 입 안에서 서로를 향한 충동이 어지럽게 얽혀들었다.
10
눈을 떴을 때 누군가의 온기로 아침을 시작한다는 것은 상상이상으로 행복한 일이다.
피터는 지금까지 타인과 잠자리를 함께 한 기억이 거의 없었다. 막 파커 부부의 집에 맡겨졌던 어린시절, 메이는 피터를 걱정하며 잠든 아이의 곁을 지켜주었지만 차라리 혼자 있기를 원했던 성향 때문에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피터는 또래에 비해 일찍 철이 들었고, 성인이 된 후에도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했다. 사실, 피터는 늘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상실의 감각이 피터로 하여금 외로움을 학습하도록 만든 탓이다. 그런 피터에게 누군가가 자신의 옆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아주 낯선 경험이었다. 그러나 학습된 거부감이 사라지기 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눈을 뜨면, 저보다 조금 작고 부드러우면서도 포근한 살결이 느껴진다. 파커는 늘 아침 잠이 길었기에 피터는 한참 동안이나 그의 내리감은 속눈썹과 살짝 벌어진 입술, 그리고 그 사이로 색색이며 내뱉는 자그마한 숨소리를 즐길 수 있었다. 밤새 달라붙어있던 몸은 따듯하게 데워져서 마치 난로같은 온기를 품었다. 피터는 그 몸을 품안에 가득 끌어안고 파커의 여유로운 성격 만큼이나 느긋하게 박동하는 심장 소리를 듣는 일을 즐겼다. 그러면 그 순간 만큼은 피터의 세상에 단 둘만이 남는다.
이불 아래에서 온몸을 감싸는 체온이 좋았고, 목덜미를 간질이는 산들바람같은 날숨이 좋았고, 맞닿은 몸을 통해 고요하게 전해지는 두근거림이 좋았다. 피터는 살그머니 몸을 떨어트리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곤히 감긴 파커의 눈가 주름을 더듬어 보았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주름진 눈매를 온화하게 휘어트리며 웃어주는 새파란 눈동자가 가장 좋다는 생각을 했다.
피터는 천천히 파커의 얼굴을 매만졌다. 세공품을 다루듯 소중하고 섬세하게. 감각을 곤두세운 손가락 끝이 얼굴의 미세한 솜털을 쓰다듬듯 뺨을 스치고, 눈가를 맴돌았다. 그러나 여전히 파커에게서는 눈을 뜰 기미가 없자 피터는 조금 더 과감해졌다.
손끝 하나 제대로 대지 못해 망설이던 손이 마침내 파커의 뺨을 감쌌다. 눈을 감고 가만히 숨을 죽이며 입술을 마주대자 새근거리던 숨소리마저 멈추고 서서히 커져가는 파커의 심장 소리만이 들렸다. 피터는 그저 호흡조차 멈춘 입술을 가만히 맞대고 있을 뿐이었다. 유일하게 남은 두근거림이 아니었다면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멈추었던 숨은 그만큼 길게 이어졌고 피터는 파커의 옅은 한숨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피터와 동시에 파커가 눈을 떴다.
"…좋은 아침, 피터."
피터가 보고싶었던 미소를 머금으면서 파커가 말했다. 서글서글하게 휘어진 얇은 눈매의 틈새에서 구슬같은 눈동자가 파랗게 반짝였다. 피터는 그 눈을 홀린듯 바라보다가, 조금은 수줍어 하는 양 작게 추켜올라간 입술의 호선을 따라 웃고는 파커의 간질거리는 속삭임만큼이나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은 아침, 피터.
또 다시 입술이 마주쳤다.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몸을 맞대며 목에 팔을 휘감았고, 아랫입술을 살며시 깨물면서 혀를 내밀었다. 잠꼬대를 닮았지만 그렇다기에는 농염한 목울림이 새어나오자 심장 소리가 빨라졌다. 피터는 조급하지 않게 입천장을 쓰다듬다가 타액의 질척거림을 느끼며 혀를 얽혔다. 자신의 하루에 늘 파커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좋아서, 끝을 모르고 팽창하는 행복으로 가슴 속이 가득 채워져 버린다. 그 감각은 때로는 설렘이 되고, 사랑스러움이 되었으며 가끔은 은밀한 흥분이 되기도 한다.
파커의 허리를 안고 있던 손이 그의 등을 꾹 눌러 몸을 밀착시켰다. 아주 잠깐 떨어졌던 입술은 잠깐의 호흡을 확보하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다시 겹쳐지며 점점 더 진득해지는 키스를 이어갔다. 가슴에서부터 녹아내린 행복의 열기가 이번에는 뱃속에 고였다. 피터는 마치 기대된다는듯 즐거움을 담은 나직한 웃음 소리를 들었다. 그 웃음도, 체온도, 입술의 감촉도, 파커의 모든 것이 피터에게는 그저 행복이었다.
09 | ※피터2♀
"찌그러져 있어, 피터."
욕설을 내뱉은 플래시가 등을 돌리자 주변을 둘러싸고 야유와 함성을 퍼붓던 다른 아이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소란스러운 발자국 소리는 점점 멀어졌지만 피터는 곧장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꼴사납게 흙바닥을 굴렀다. 고통에 찬 기침이 터져나왔다. 다들 분위기를 망쳤다며 투덜거릴 뿐 누구 한 명 피터를 도와주는 학생은 없었다. 심지어는 플래시에게 괴롭힘을 당한 고든 조차도 도망가기 바쁘니 말이다.
피터는 간신히 구부정해진 몸을 일으켰다. 터진 입술이 쓰라렸지만 그보다는 제대로 얻어맞은 복부가 욱씬거려 제대로 허리를 펴기 힘들었다. 분명 멍이 들었을 것이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고 홀로 남겨지는 기분은 욕짓거리가 나올 만큼 억울하고 허무했다. 옳은 행동을 하는 일에 망설임은 없지만, 그 끝은 항상 이런 꼴이다. 차라리 다른 아이들처럼 모르는 척을 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의 융통성없는 참견은 늘 플래시의 분노를 부추겼다.
자신과 비슷한 꼴로 나동그라졌을 카메라가 부디 누군가에게 짓밟히지만 않았기를 바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근처에 떨어졌을 카메라는 온데간데 없고 대신 그의 옆에 우두커니 선 낡은 운동화 한 쌍이 보였다. 피터가 고개를 들었다. 짧은 숏컷에 두꺼운 안경을 쓴 학생 한 명이 피터의 카메라를 내밀었다. 흙을 전부 닦아냈는지 떨어뜨렸던 것 치고는 멀끔하기만 했다.
"괜찮아?"
"…그럭저럭."
카메라를 받아 든 피터의 시선이 여학생의 모습을 흩었다. 비록 학급은 달랐지만 모를 수가 없는 녀석이었다. 친구 한 명 없이 조용하고 소심한 그녀는 본래대로라면 그만큼 존재감도 희미해야했지만 하필이면 피터와 똑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그나마 여자랍시고 플래시가 직접적으로 그녀를 건드리는 일은 없었으나, 대신 피터라는 이름의 여자아이는 그 존재만으로도 피터를 놀려먹기 좋은 수단이 되었다. '헤이 피터! 오, 미안. 너무 계집애같이 생겨서 헷갈렸나보네!' 물론 유치한 장난거리의 구실을 한 가지 더 제공했다는 이유로 그녀를 싫어하거나 하는건 아니었다. 오히려 피터와 싸잡혀 구설수에 오르게 되어 미안할 따름이었기에 복도에서 그녀를 마주쳐도 굳이 아는 척을 한 적은 없었다.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화다운 대화 한 번 해보지 못한 상대였으나 피터는 그녀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는 했다.
처음 그녀를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눈이 정말로 파랗다는 생각이었다. 꼭 할아버지의 노안경을 연상시키는 촌스러운 금테와 동그란 렌즈 탓에 무심코 놓쳐버릴 뻔 했지만, 한 번 눈동자를 마주치고 나면 쉽게 눈길을 거두기 힘들 만큼 깊고 선명한 색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피터는 언젠가 귓동냥으로 들은 동급생들의 짓궂은 수근거림을 떠올렸다. 짧은 머리에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 밋밋한 체구, 커다랗고 후줄근한 니트. 여학생들은 경쟁상대 조차 되지않는 그녀에게 완전히 무관심했고 남학생들은 사내새끼같다며 비웃었으나, 그 중 그녀의 눈을 제대로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여즉 감싸쥐고있는 복부를 향해 슬짝 눈을 내리깔자 짧지만 촘촘한 속눈썹이 드리워졌다. 안경만 아니었다면 피터 뿐만이 아니라 사내새끼를 운운하던 남학생들 역시 그녀의 도톰한 눈덩이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았을 것이다.
"아파보여."
걱정스러운 시선이 피터에게서 떠날 줄을 몰랐다. 괜히 뒷목을 문지르며 쭈뼛거린 피터가 저 멀리 내팽개쳐진 가방을 주워 어깨에 둘러매었다. 꼼지락거리는 손가락과 옴질거리는 입술을 보건대 무언가 더 하고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안경 너머에서 그 동그란 눈을 데룩데룩 굴리기만 할 뿐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기다리다 못한 피터가 어깨를 으쓱였다.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봤자 플래시 무리에게 괴롭힘 거리를 하나 더 던져주는 꼴이 될 것이다. 어색하게 고개를 까닥인 피터가 몸을 돌리려 하자 그제야 그녀가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방금 멋있었어."
우뚝, 피터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그런 말을 듣게 되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한지라 놀란 눈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안경테에 가려진 얇은 눈썹이 매끄럽게 휘어지며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보조개가 있네. 피터가 무심코 생각했다. 양쪽 입가에 움푹 들어간 자그마한 보조개는 입술을 오므린 수줍은 웃음과 퍽 잘 어울렸다. 여전히 속삭임마냥 웅얼거리는 말투였지만 그 작은 입술이 바지런히 움직이는 모양새를 보고 있노라면 답답하기는 커녕 귀엽기만 했다.
"정말이야. 굉장히 멋있고… 대단해. 너처럼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야."
붉어진 귓불이 하얀 피부와 대조되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피터는 자꾸만 덩달아 올라가려는 입을 손으로 가리며 대답했다. "고마워." 딱히 이런걸 바라고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08
피터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한눈에 반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이제 그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벤 삼촌이 살아계시기만 했다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라며 헛웃음을 짓고는 '내가 네 나이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으로 시작되는 장황한 잔소리를 늘어놓겠지만, 벤 삼촌 조차도 '하이틴 로맨스같은 사랑을 하기에는'이라는 수식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30대 언저리, 환상에 가득 찬 하이틴 로맨스를 겪기에는 아무래도 늦은 나이였다. 그리고 피터가 생각하는 하이틴 로맨스에는 첫 눈에 빠지는 사랑도 포함된다.
30대에 들어서면서 피터에게 사랑이란 단 두 가지 형태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첫 번째는 하룻밤 사이에 빠르게 타올랐다가 꺼져버리는, 오직 육체의 애정 만을 갈구하는 불장난과 같은 사랑이었으며 두 번째는 긴 시간을 들여 서서히 타오르는 느리면서도 착실한 사랑이었다. 현실의 사랑을 알게된 사람에게 이상형이란 사랑에 빠지는 계기가 될 수는 있어도 사랑 그 자체는 되지 않는 법이다. 피터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그의 마음 속에 발을 들여놓은 누군가가 완전히 터를 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첫 사랑의 실패 이후 아직도 마음 속에 누군가를 품는 일은 버거웠을 뿐더러, 스파이더맨에게 새로운 만남이래봤자 결국은 범죄자 혹은 피해자 뿐이다. 그 때문인지 30대 피터의 사랑은 대개 첫 번째가 되었다. 긴 시간 동안 두 번째와 같은 사랑의 경험이 아예 없었던건 아니었으나 결국에는 이루어지지 못한 채 끝을 맺었다.
아주 느리게, 가랑비에 젖듯이 저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사이 상대는 이미 제 짝을 찾아버리곤 했고, 피터가 어느 정도 자신의 사랑을 알게 될 때 쯤이면 그것은 이미 잊어야만 하는 감정이 되어버렸다. 피터에게 사랑이란 어차피 죄책감을 동반하는 감정이었기에 미련 따위는 없었다. 어쩌면 타오를 수 있을지도 몰랐던 작은 불씨는 제대로 싹을 티우기도 전에 잿더미만 남기고 꺼져버리기를 반복했다.
가슴 한 구석에 잊을 수 없는 유일한 사랑을 묻어놔야 하는 피터로서는 성욕에만 매달리는 육체적인 사랑에도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 독신주의나 비혼주의자 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결혼에 절실하지도 않은 만큼 굳이 연인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누군가를 좋아한들 느릿하고 권태로운 사랑으로는 단념과 포기도 쉬웠다. 그래, 그 날 이후 피터는 단 한 번도 사랑에 필사적이었던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피터는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에, 그것도 부정할 겨를도 없이 '한눈에' 반하게 되었다는 것에. 망설임을 느끼기에는 너무나 갑작스레 찾아와버린 사랑은 순식간에 피터의 텅 빈 가슴을 격렬하게 타오르는 불길로 가득 채워버렸다.
07
힘들다. 밤마다 웹스윙을 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 뉴욕 전체를 돌아다니는 일이 어디 그럼 쉽겠냐만은, 평소보다도 유난히 더 힘든 밤이었다. 어쩌면 조금 전에 마주친 시위단체 때문에 더욱 그럴지도 몰랐다. 스파이더맨의 얼굴에 빨갛고 커다란 글씨로 GET OUT! 이라고 써놓은 팻말을 높이 쳐들은 시위대는 스파이더맨이 뉴욕에 혼란을 가져온다고 굳게 믿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머리 위를 지나가는 피터를 보자 큰소리로 야유를 퍼부었고 계란 따위를 던져대었다. 다행히 피터를 맞추기에는 지나치게 느리고 낮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무시하기에는 애꿎은 행인이 계란을 뒤집어쓰게 될 상황이었다. 허공을 날아다니는 수 개의 계란을 잡기위해 그 장소에 발이 묶인 것이 화근이었다. 거리 한복판에서 일어난 드잡이질에도 불구하고 피터는 그들에게 차마 손을 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는건 아닌지라 패트로를 마저 끝내고 돌아가는 피터의 마음은 꽤나 울적했다. 그런 일을 겪는 것이 처음도 아니고, 고작 그 정도로 이 일이 싫다거나 그만두고 싶다는건 아니지만 스파이더맨에게도 그런 날이 있는 법이다. 힘들고 우울해서 위로가 필요한 날.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그 전부터 피터의 귀가를 알아차린 파커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커는 마스크를 쓴 피터의 얼굴을 보자마자 살짝 눈썹을 밀어올리더니 오… 나지막한 탄식을 내뱉었다. 그는 곧 부드럽게 웃으며 피터를 향해 양팔을 활짝 벌렸다. "이리와, 피터." 다정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에 피터는 마스크 안에서 어린 아이마냥 울상을 지었다. 비척비척 다가가 꼭 마주 안기자 상냥한 손길이 등을 쓸어내리며 천천히 토닥였다. 때로는 말보다 조용한 온기가 더 큰 위로가 되곤 한다. 피터에게 파커는 그런 존재었다. 내내 떨쳐내지 못했던 야속함과 억울함이 사르르 녹아내려 순식간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떻게 알았어?"
여전히 파커에게 푹 안긴 채 피터가 물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파커는 언제나 그가 필요해지는 순간을 손쉽게 알아차리고서 기꺼이 품을 빌려주었다. 파커는 자신의 어깨에 고개를 기댄 피터의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소리내어 웃었다.
"그야 항상 널 생각하고 있는걸."
06 | &피터(1)맷
집에서 (자발적으로)쫒겨났다. 미셸은 그녀가 일하는 도넛샵의 카운터석에 어깨를 축 늘어트릭로 앉아 테이블 위로 고개를 처박은 피터를 동정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안타까운 친우를 위해 미셸은 오늘도 자비로운 커피 한 잔을 건넸다. 피터는 한쪽 뺨을 테이블에 짓누른 채 스읍, 커피향을 깊이 들이켰다. "고마워." 울적하게 웅얼거리는 피터에게
"오늘도?"
미셸이 물었고
"오늘도."
피터가 대답했다. 그의 옆에서 입안 가득 초콜릿 도넛을 쑤셔넣고 있던 네드가 킥킥 웃었다. 팍 미간을 찡그린 미셸이 눈을 흘겼다.
"난 심각해, 네드."
고개를 든 피터가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눈가를 꾹꾹 누르며 탄식을 내뱉자 그제야 네드의 얼굴에도 조금이나마 동정심이 피어올랐다. 피터의 어깨에 턱 팔을 얹은 네드는 안타깝기 그지없다는─하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다는─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새엄마가 생겼다고 생각해. 새아빠도 괜찮고. 신혼인거잖아. 네가 받아들여야해."
여전히 네드의 어투는 가볍기만 해서 피터는 으으, 비관적인 신음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네드의 말대로 재혼한 부모님이었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그래도 자식 앞이라고 좀 더 은밀하게 굴 테니까! 이건 마치, 그래. 룸메이트가 하루가 멀다하고 집에 애인을 끌고오는 꼴이다. 문제는 룸메이트도, 그 룸메이트의 애인도 전부 피터의 동거인이라는 점이었다.
그렇다고해서 한창 눈이 맞아 불이 붙은 그의 새로운 형제들이 피터가 집에 있든없든 투명인간 취급을 하는 후안무치냐고 묻는다면,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두 명의 또다른 피터 파커는 피터가 있을때면 행여라도 그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 다만 제 아무리 조심한다 한들 새내기 연인 사이에서 나타나는 은근한 분위기는 없앨 수가 없었고 피터에게는 그에게 해가 될만한 기류를 빠르게 눈치챌 수 있는 예민한 감각이 있었다. 그건 마치 피터에게 자리를 피해주도록 종용하는 것만 같았다.
아예 집밖으로 나오는 대신 방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그리 영리하지 못한 짓이라는걸 깨닫는건 금방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풀어 지기 마련이다. 조심스러웠던 스킨쉽은 과감해지고 끝내 피터의 방이 바로 옆이라는 것도 잊은 채 점점 더 참지못한 신음을 내기 시작하는데, 그 소리를 얇은 벽 하나를 세워 두고 듣느니 일찌감치 집을 나오는 편이 차라리 나았다.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에게 애정행각은 딴데 가서 하라는 매정한 소리는 차마 하지 못하는 피터가 누구를 탓하겠는가. 옆방의 존재를 신경쓰지 않을 수 있을만큼 넓은 집은 커녕 방음이 좋은 집을 구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호텔 방을 잡을 수도 없는 뉴욕의 살인적인 물가와 빈약한 아르바이트 시급을 탓할 수밖에.
"솔직히 말해서."
머리를 감싸쥔 피터가 입을 열었다.
"쫒겨나는건 괜찮아."
안 괜찮아 보이는데. 중얼거리는 네드를 향해 미셸이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자 그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집에서는, 그래,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하지만…"
울적하게 가라앉아있던 목소리가 점점 더 울분을 담듯 커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머리카락을 쥐어 뜯을 기세로 헤집으며 소리를 질렀다.
"패트롤 중에는 자중해줘야 하잖아!!!!"
오, 이런. 나지막한 탄식을 내뱉은 네드가 도저히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한듯 고개를 돌렸고, 미셸은 카운터 위에 있던 당일 날짜의 조간 신문을 저 멀리 밀어냈다. 신문의 1면 에는 코 아래까지 마스크를 올린 두 스파이더맨의 열렬한 키스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살려있었다. 무려 '스파이더맨의 성지향성이 탄로나다!' 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데일리 뷰글은 이 기사로 하여금 역대 판매부수 기록을 갈아치웠을 것이 분명하다.
피터는 또 다시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았다. 그의 입에서는 울먹임섞인 안타까운 혼잣말이 쉬지않고 흘러나왔다. 저 보도 이후로 나한테 플러팅을 거는 사람들이 많아졌어. 어떤 사람은 도와줘서 고맙다면서 내 엉덩이를 토닥였다고. 헤이, 리틀 스파이더맨! 당신도 남자친구 있어요? 핫한 남자 좋아해요? 나는 어때요? 물론 힘내라고 응원해주는 사람도 있었지. 정말로 고맙고, 상냥한 분이었지만, 아니, 상대가 잘못된거 아냐? 난 게이가 아니란 말야!!
마지막은 혼잣말보다는 차라리 비명에 가까웠다. 번쩍, 고개를 쳐드는 동시에 있는 힘껏 움켜쥔 주먹을 허공에 대고 공격적으로 휘두르던 피터는 갑자기 가게의 출입문이 딸랑이는 소리를 내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피터의 귓가가 확 붉어지더니 조금 전까지에 비하면 퍽 얌전해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 맙소사. 너무나 잘 알고있는 손님의 등장에 피터는 적잖게 당황한 눈치였다. 검은 선글라스를 쓴 남자는 가게 안으로 들어오면서 지팡이를 들지 않은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비록 눈은 가려져있지만 살짝 올라간 입꼬리로 하여금 그가 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파커군. 당신 맞죠? 목소리가 들리던걸요."
"아, 안녕하세요, 맷."
더듬거리면서 마주 인사한 피터가 재빨리 자신의 머리며 옷을 매만졌다. 헝크러진 머리는 가지런해졌고, 옷매무새는 가지런해졌지만 맷이 그 사실을 알리가 없다. 미셸은 쭈뼛거리기 시작한 피터를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손으로는 맷의 주문에 맞춰 상품 단말기에 금액을 눌렀다. 도넛은 포장,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 얌전히 주문한 메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있는 맷을 힐끔거린 피터가 크흠, 괜히 헛기침을 하더니 마치 조금 전 외침의 연장이라는 양 네드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니까─ 난 게이가 아니라 바이라는, 뭐, 그런거지."
허어. 네드가 콧웃음을 쳤다. 기가 찬 얼굴로, 커피를 내리기 위해 카운터석 안쪽으로 들어온 미셸을 향해 속닥였다. 피터 파커는 다 게이인가봐.
05
피터는 파커의 겨드랑이 아래에 팔을 집어넣어 일으켜세웠다. 축 늘어진 몸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흐물흐물 흔들렸지만 스파이더맨의 초인적인 힘 덕분에 그를 지탱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단 파커를 소파에서 끌어내는데 성공한 피터는 그의 등과 무릎 아래를 받쳐서 번쩍 들어올렸다. 파커는 벌개진 얼굴로 반쯤 감긴 눈을 꿈벅이면서 실없는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왜 이렇게 마셨대. 혀를 찬 피터가 그를 방으로 옮겼다. 침대에 내려놓자 푹신한 감촉이 기분좋은지 자꾸만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불을 눈 아래까지 끌어올렸는데도 그의 몸에서 풍기는 술냄새는 조금도 옅어지지를 않았다. 갓 성인이 된 어렸던 때라면 모를까, 이제는 피터 역시 오롯이 홀로 들이키는 알코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다.
"뭐가 그렇게 힘들어?"
침대에 걸터앉아 이불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파커의 짧은 머리칼을 매만지며 물었다.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혼잣말이었지만 용캐 피터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아니면 의식없이 내뱉는 잠꼬대같은 것인지 자그마한 중얼거림이 새어나왔다.
"MJ가 보고싶어…"
움찔, 머리를 쓰다듬으려던 손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피터는 결국 방황하듯 정수리를 맴돌던 손을 슬그머니 거둘 수밖에 없었다. 내심 예상했던 일이지만 막상 직접 파커의 입으로 말하는 모습을 보니 다른 기분이 들었다. 파커는 그들이 돌아갈 길을 찾지 못하고 이 세계에 표류하게된 것을 알게된 날 남 몰래 입술을 깨물었을 뿐, 이후로는 피터에게도 핏에게도 MJ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표현하지 않는다 한들 괴롭지 않을리가 없다. 두 피커 파커를 든든하게 지탱해주는 선배이자 연장자로서 그리움에 젖어가는 속내를 내색하지 않았던 그의 성숙함에 내심 감탄하면서도, 사실은 그런 평소 모습이 무너지도록 홀로 마음 속에 품고 있었다는 것에 질투가 났다. 지금 파커는 피터의 곁에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가 멀게만 보였다. 여전히 파커의 마음 속에는 피터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파커에게 그의 흔들림없는 단단함 속에서 품고있는 사랑이 있듯이, 피터에게는 그의 쾌활함 속에서 곪아가는 사랑이 있었다. 피터가 파커의 머리 위로 고개를 숙이고서 속삭였다.
"우리가 여기 남게돼서 기뻤다면 화낼 거야?"
이번에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 대신 색색이는 고른 숨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자신의 말을 듣지 못했다는 것에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는 늘 자신의 곁을 맴도는 피터의 마음을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MJ애 대한 애정만이 가득했다. 설령 눈치챈들 그곳에 피터를 들일 공간은 없다. 그런 파커가 피터의 이기적인 속내를 알게된다면 화를 낼지도 몰랐다. 파커가 진심으로 화를 내는 모습을 상상하는건 어려웠지만 MJ를 사랑하는 파커를 상상하는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그저 그녀에게 주는 마음의 아주 작은 조각이면 충분했다. 기약도 없이 이 세계를 살게되었을때 품었던 아주 약간의 기대감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깨닫는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파커는 두 피터 파커를 사랑했으나 그것은 피터가 원한 형태와는 전혀 달랐다. 이곳에 그의 MJ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조차 파커의 마음을 비집는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피터는 감히 파커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할수 없었다.
피터는 조심스럽게 입술을 겹쳤다. 그저 닿는것만으로도 피터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마침내 맛본 짧은 입맞춤의 맛은 취할것 같은 독한 알코올 향으로 가득해서, 으레 기대할 법한 달콤함 따위는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04
어떤 사람들은 봄의 시작을 2월로 보기도 한다지만 얇은 스판덱스 한장만으로 바깥의 찬공기에 맞서야하는 스파이더맨에게 2월은 분명 겨울이었다. 다같이 정한 순번에 따라 오늘치 패트롤을 끝내고 돌아온 파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추위에 약하고 곧잘 감기에 걸리곤 하는 피터를 위해서 겨울에는 패트롤 횟수를 대폭 늘리는 파커였지만 그런 파커도 겨울 패트롤 후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전기난로와 담요를 찾곤 했다.
겨울의 냉기를 품고있는 스판덱스에서 막내가 사온 포근한 실내복으로 갈아입은 파커는 어깨에 담요를 걸치고 전기 난로가 돌아가는 거실 소파에 앉았다. 각자의 방에 난로를 하나씩 두는 일은 그들에게는 큰 사치였기에 날씨가 추울 때면 피터 파커들은 거실 한가운데로 옹기종기 모여들곤 했다. 이를테면 방안의 모든 가재도구를 들고나와 거실에 한자리를 차지하고서 웹슈터를 수리하는 피터처럼 말이다.
파커가 집에 돌아온 즉시 웹슈터를 놓고 일어섰다가 그가 옷을 갈아입고 몸을 녹이는동안 주방을 맴돌던 피터는 곧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머그컵 두 개를 들고 돌아왔다. 훅, 단내가 풍기는 머그컵을 파커에게 내밀던 피터가 그의 실내복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키티?" 파커가 머그컵을 받아들며 어깨를 으쓱였다. "막내가 준거야." 보들보들한 재질의 핑크색 키티바지가 제법 파커의 마음에 들었나보다.
파커는 양손으로 머그컵을 감쌌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듯한 수증기와 함께 올라온 초콜릿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분홍색 키티바지가 그랬듯, 달콤한 밀크 코코아 역시 막내의 취향이다. 다만 커피를 대신해 코코아를 가져온 것은 온전히 피터의 선택이었기에 파커는 한쪽 눈썹을 추켜올리며 장난이 섞인 핀잔을 주었다.
"코코아? 진심이야?"
"마시멜로우도 넣었어."
피터가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말은 그래도 그는 파커가 종종 밀크 초콜릿을 한 조각씩 까먹고는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역시나 파커는 군말 없이 코코아를 마셨다. 머그컵을 살짝 기울이자 녹은 마시멜로가 섞인 몽실몽실한 우유거품이 윗입술을 적셨다. 파커에게 처음 코코아를 타주었던 날, 피터는 스파이더맨의 완력이라면 거품기 없이도 우유거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머그컵을 좀더 기울여 우유거품 아래의 코코아까지 꿀꺽, 한 모금을 넘겼다. 막 데운 우유의 온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코코아가 부드럽게 목을 타 넘었다. 마치 따듯함 그 자체를 삼킨 것만 같다. 약간의 쌉싸름함이 섞인 달콤함을 머금은 코코아의 온기는 파커의 몸을 타고내려가 아랫배를 포근하게 녹였다. 한 모금을 더 삼키자 내부로부터 피어오른 따끈한 열감이 구석구석으로 퍼졌다. 파커는 나른해진 얼굴로 느릿하게 숨을 내쉬었다. 전기난로로는 충족되지 못했던 만족감이 비로소 가슴에 들이찼다. 입술을 옴질거리며 입맛을 다시는 모습을 빙글빙글 웃으며 바라보던 피터가 파커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거품 묻었다."
쪽. 짧은 사이에 빼꼼히 내민 혀가 입술을 흩고 떨어졌다. 이제는 피터의 그런 뻔뻔스러운 행동에도 완전히 익숙해져 버렸다. 파커는 대수롭지않게 자신의 입가를 문질렸다. 다만 슬쩍 내리깐 눈을 가볍게 흘기면서 주의를 줄 뿐이다.
"우리만 사는 집도 아니라니까…"
"핏은 지금 없잖아."
짓궂은 대답이다. 파커가 코코아를 또 한 모금 홀짝이기가 무섭게, 피터가 다시 날름 입술을 핥았다. 막내가 있어도 할거였으면서. 타박 섞인 핀잔이 목구멍까지 솟아올랐지만 파커는 그것을 달콤한 코코아와 함께 삼켜버렸다. 어쨌든, 피터의 말마따나 지금 그 애는 없으니까. 이러다 집에 돌아온 것을 눈치 채지 못하는 바람에 또 다시 막내의 원성을 사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두 사람이 신경써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03
피터는 자신의 나이에서 혈기왕성한 때는 이미 지났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제 겨우 서른 언저리, 아직은 성적 욕구를 향한 신체적 반응이 활발했지만 피터가 생각하는 혈기왕성한 때라 함은, 좀 더 경우를 모르고 자제력 없는 때를 의미한다. 이를테면 침대 아래에 숨겨놓은 야한 잡지를 매일매일 꺼내볼 수 있다거나, 작정하고 빼내면 휴지를 반통 정도 비워버릴 수 있다거나, 멍하니 버스 손잡이를 잡고 서있다가 이유없이 하반신에 피가 쏠린다거나 뭐 그런 것들. 한창때의 10대 청소년에게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시기는 이제 피터에겐 오래 전 이야기였다.
피터는 자신에게 성인다운 자제력이 있다고 믿었다. 설령 눈앞에 벌거벗은 여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점잖은 어른이었다. 잡지나 비디오같은건 한참 전에 졸업했으며─물론 생리적인 현상이 아예 없는건 아니었지만─미처 해소하지 못한 욕구의 발현으로서 아침마다 사타구니에 텐트를 치지도 않았다. 아니,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피터에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바지춤에서 느껴지는 축축한 감각은 퍽 생소한 기분을 불러 일으켰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두개 밖에 없는 방들 중 하나를 막내에게 양보하고 피커와 한 침대를 쓰기로 합의했을 때 부터 예견된 일이었을까? 남몰래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과 좁아 터진 침대에서 매일 몸을 딱 붙이고 잠드는 일이, 10대의 첫사랑 마냥 피터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건 사실이라지만 몸까지 10대가 되어버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리 사이의 물건이 힘차게 자기주장을 하는 아침이 비단 오늘 하루 뿐만은 아니라는 점이 가장 피터를 절망적으로 만들었다.
한 두번 그러고 말겠지, 라는 안일함은 피터의 간절함을 손쉽게 배신해 버렸다. 이제 피터는 현실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꿈 속 파커의 모습에 완전히 익숙해졌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살금살금 화장실로 들어가 속옷을 박박 문질러야 했다. 덕분에 피터는 익숙하다고 해서 동하지 않는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이번에도 피터는 파커가 잠에서 깨기 전에 침대에서 나가기 위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귓가에 닿는 파커의 고른 숨소리는 꿈 속과는 정반대로 평온했지만, 그런데도 자꾸만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내뱉던 거친 헐떡임이 귓가에 맴돌아 그 모습마저 눈에 선하다. 피터가 자신의 뺨을 후려치지 않은 것은 순전히 파커가 깰까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피터는 힘껏 혀를 깨물었고 다행히 그럭저럭 효과가 있었다. 눈물을 짜내가며 얻은 고통을 대가로 아직 머릿속에 남은 꿈의 잔상을 털어낸 피터는 사타구니에 들러붙는 속옷의 끈적임에 진저리를 치면서 몸을 일으켰고, 화장실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다가 그를 빤히 바라보는 한쌍의 푸른 눈동자와 마주치고 말았다.
"!!!!!!!!!"
너무 놀라면 비명도 나오지 않는다고 하던가. 피터는 막 이불을 들추던 동작 그대로 석상마냥 굳어버렸다. 숨막히는 고요함 가운데, 피터의 얼굴을 올려다 보고있던 파커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오." 파커는 약간의 당황스러움이 섞인 묘한 감탄사를 짧게 내뱉었다. 자신이 직면한 상황에 대한 부담감과 민망함이 솔직하게 드러나는 표정으로 데룩데룩 눈을 굴리더니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어. 음. 괜찮아. 이건 네 나이에는 자연스러운.... 그런데 네가 몇 살이더라?"
피터는 그냥 죽고싶어졌다. 가장 부끄러운 사실은, 부끄러워 죽을 것 같은 기분에도 불구하고 다리 사이에서 불룩하니 고개를 추켜든 존재감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는다는 점이다.
02
모든 일이 그러하듯 깨달음의 순간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피터 토바이어스 파커에게는 바로 지금이었다.
그저 평소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밤이었다. 평소와 같은 시간, 평소와 같은 루트. 슈퍼빌런이 없는 뉴욕은 평화로웠지만 동시에 위험한 도시여서 파커는 패트롤을 도는 동안 세번의 강도를 잡았고 다섯번 위험에 빠진 시민을 구했으며 두번 경찰관을 도와 움직였다. 그의 곁에서 함께 빌딩 사이를 가로지르는 또 한 명의 피터 파커의 존재도 익숙해져 버린, 평범하디 평범한 밤이었다.
그럴텐데 왜 하필 지금이었을까. 파커는 그저 웹스윙을 하면서 밤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오르는 파커의 들뜬 환호성을 듣고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을 뿐이다. 순간 피터의 모습이 파커의 눈동자 속에 가득 담겼다. 피터는 거미줄을 놓는 동시에 몸의 탄성을 이용해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았고 그의 길쭉하게 뻗은 낭창한 몸이 아름다운 굴곡을 그렸다. 바로 그 때, 파커는 그만 피터에게 모든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사랑을 깨닫는 순간에 보이는 풍경에는 마치 마법같은 특별함이 있었다. 밤의 어둠을 삼키며 사방에서 반짝거리는 도시의 네온사인과 빌딩의 불빛은 질리도록 봐왔음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파커의 모든 시선을 사로잡았고, 그 중심에서 밤공기를 유영하며 활강하는 피터의 모습은 뉴욕의 불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거미줄을 쏘아 포물선을 그리며 높이 날아오르는 몸짓은 춤을 추는 양 유연하고 부드럽다. 그의 주변을 감싼 다채롭고 현란한 네온사인의 빛깔이 피터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도시의 모든 것이 피터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날렵하게 웹스윙을 하는 피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파커는 불현듯 생각하고야 말았다. 그가 너무나 사랑스럽다고.
갑작스러운 자각은 경악과 충격을 함께 불러왔다. 찰나의 순간에 머릿속으로는 온갖 상념들이 휘몰아쳤다. 드디어 미쳤구나, 피터 토바이어스 파커! 쟤는 피터 파커라고. 또 다른 너같은 존재란 말야. 어디 그뿐이야? 너보다 열살은 어려. 도대체 양심이라는게 존재하는 거야? 언제 이런 쓰레기가 된건데? 나 자신이 이정도로 실망스러울 수가 없다. 마음 속의 목소리는 지극히 이성적인 욕설을 늘어놓으며 파커의 감정을 뒤흔들었다. 혼란은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파커의 정신에 영향을 끼쳤다. 거미줄을 소기 위해 오른손을 높이 뻗었음에도 손목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파커는 그만 아래로 추락하고야 말았다.
당황이 가득 담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떨어지는 파커를 발견한 피터가 깜짝 놀라 황급히 몸을 날렸다. "으악, 피터2!!!!" 피터의 거미줄이 파커의 몸에 달라붙고, 그것을 힘껏 당기자 튕겨져 올라온 파커를 품에 안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갑자기 무슨일이에요? 거미줄이 안나와요? 능력이 사라진거에요? 혹시 존재에 회의감을 느꼈어요?!?!"
허둥지둥 가까운 건물 위에 착지한 피터는 행여 다친 곳이 있지는 않은지 피터의 얼굴이며 몸을 더듬어대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쉴새없이 입을 놀리면서 쏟아내는 질문에 파커는 마스크 속에서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회의감을 느끼긴 했지. 그러나 피터에게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 파커는 놀란 피터를 간신히 달래어 진정시켰다. 눈에 보이는 마스크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지만 그 속에서 울먹이고 있을 표정이 빤히 그려져서 마음 속이 술렁거렸다.
"괜찮아. 일시적일 거야."
"아 정말…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요."
맥풀린 한숨을 내쉬면서 마스크를 벗으려는 피터의 팔을 재빨리 붙잡았다. 거의 코끝까지 올라갔던 마스크가 파커의 손길을 따라 도로 내려갔다. 그런 파커의 행동이 의아스러운지 피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안하지만 파커는 지금 피터의 맨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랬다가는 파커의 심장이야말로 정말 뚝 떨어져버릴 테니까.
01
벌컥, 창문이 열리자 살을 애는 겨울의 시린 찬바람과 함께 흩날리는 싸리눈이 방 안으로 날려 들어왔다. 갑자기 들이닥친 겨울의 공기를 느끼고서 한껏 몸을 움츠리던 파커는 곧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파랗고 빨간 덩어리 하나가 굴러 들어오자 깜짝 놀라 책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치 겨울 바람에 쫒기듯이 창문을 통해 뛰어 들어온 피터는 창문 바로 아래에 있는 침대로 몸을 던지기가 무섭게 몸을 둥글게 웅크리며 소리를 질렀다.
"으악, 너무 추워!!"
파커는 황급히 창문을 닫았다. 피터의 코스튬 위로 계속해서 흩뿌려지던 싸리눈이 마침내 사라지자 피터는 꾸물꾸물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어 앉았다. 훌쩍. 마스크 안쪽으로 콧물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그는 팔장을 낀 손을 겨드랑이 아래에 밀어 넣고서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눈이 온다는 일기 예보를 봤을 때 부터 불안했건만, 추위에 유난히도 약한 둘째 동생은 한시간 남짓 패트롤을 도는 사이 그새 감기라도 걸린 모양이었다.
"아, 역시 오늘은 내가 나갈걸."
가볍게 혀를 찬 파커가 피터의 팔을 붙잡아 끌어 당겼다. 눈을 맞고 들어온 탓에 코스튬이 축축한 물기를 머금고 있어 얼른 시트를 당겨 어깨에 둘러 주었다. 녹은 눈이 물방울이 되어 맺혀있는 웹슈터를 풀고 손목 부근의 지퍼를 열어 장갑을 벗기자 손가락 끝이 발갛게 얼어 있다. 오, 이런. 실내의 온기를 간직하고 있는 파커의 손이 피터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손이 다 얼었어."
코맹맹이 소리까지 내가며 입술을 삐죽거린 피터가 냉큼 반대쪽 손을 내밀었다. 파커는 그쪽도 똑같이 웹슈터를 풀고 장갑을 벗겼다. 마치 얼음덩어리처럼 느껴지는 두 손을 모아서 꼭 그러쥔 파커가 그 위로 고개를 숙였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에 호호, 따듯한 입김을 불다가 자신의 뺨에 살포시 가져다 대자 피터는 손가락 끝을 움찔거렸다. 내내 실내에 있었던 파커의 얼굴은 난로처럼 따듯해서 손바닥이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피터는 서서히 녹아가는 손의 간질간질한 감각을 느끼면서 투정을 부리듯 말했다.
"손 말고도 차가운 곳 엄청 많은데."
슬그머니 파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예를 들면?"
"얼굴이랑, 발이랑, 아니 그냥 온 몸이 다 꽁꽁 얼었어."
파커가 목에서부터 말아 올린 피터의 마스크를 완전히 벗겨냈다. 몸을 움직이는 내내 열이 올랐다가 겨울 바람으로 식어버리기를 반복했는지 구불거리는 머리칼은 차가운 땀으로 푹 젖어있었다. 파커는 새빨개진 귀끝을 조심조심 주물러주다가 손바닥의 체온이 완전히 식기 전에 냉기를 머금은 피터의 뺨을 감쌌다. "하아─" 조금씩 데워지는 열로 인해 나른해진 한숨을 내쉬던 피터가 파커를 끌어 당기자 훅, 얼굴이 가까워졌다. 녹아내린 몸 안쪽에서부터 불꽃과도 같은 일렁거림이 스멀스멀 몸뚱이를 타고 올랐다. 금방이라도 입술이 닿을 것만 같았지만 파커는 피터가 내쉬는 한기같은 날숨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다만 기울어지는 몸은 그대로 피터를 덮치면서 쓰러졌다. 침대 위에 온기와 한기를 품은 몸뚱이가 뒤엉키자 피터는 파커에게 한껏 들러붙으면서 두 팔과 다리로 그를 꽁꽁 감싸 안았다. 순식간에 확 낮아지는 전신의 온도를 느끼면서 파커가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게. 너 엄청 차가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