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자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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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스타크
대부분의 수많은 사건이 그러하듯 그 일 역시 아주 사소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최초의 시작점은 한 쉴드 요원의 소소한 의문이었다. 스타크의 기술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딱히 답이 필요했다기 보다는, 토니의 전투 장면을 보면서 새삼스러운 감탄과 함께 자연스럽게 떠오른 혼잣말도 같은 생각에 불과했다. 하지만 별것 아닌 지나가는 소리로 치부될 수 있었던 그 한 마디는 주변의 다른 쉴드 요원들이 꼬리를 물면서 점차 확장되기 시작했다. 아이언맨의 끝도 없이 수 많은 기술들, 심지어는 쉴드에서도 흉내내지 못하는 오직 스타크 만의 놀라운 기술들에 대해 감탄을 늘어놓다 종국에는 그 이름도 유명한 인공지능에 대한 화제까지 끄집어 내어졌다.
자비스는 비록 언론에까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퓨리가 토니를 어벤져스에 합류시키려 했던 초기. 콜슨의 타워 해킹을 막고 역으로 쉴드의 시스템을 공격에 버렸던 화려한 전적 덕에 쉴드 내에서 만큼은 제법 유명 인사였다. 토니 스타크의 기술력에서 시작한 화제는 그의 인공지능 컴퓨터에 대한 이야기까지 어우러져 마침내 한가지로 귀결되었다. 왜 스타크는 자비스의 몸체를 만들지 않는가.
요원들 사이에서는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자비스의 성능이야 이미 증명되었으니 말 할 필요조차 없을 터였고, 전투 시 간간히 아머의 통신 시스템을 통해 토니가 지껄이는 담소로 보건데 그것은 충분히 인간과도 같은 지능을 지녔음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요원들의 관심사는 하나였다. 토니 스타크의 기술로 그 인공지능의 몸, 즉 인간과 똑같은 안드로이드 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냐의 여부였다.
누군가는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근거는 이미 한 세기는 월등히 앞선 듯한 하이 테크놀로지의 아이언맨 수트였다. 그 정도의 아머를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이라면 안드로이드 역시 만들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일반적인 로봇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터인 복잡한 몸체의 동력원은 아크 리액터라는 손쉬운 해결법이 있었다.
반면 그 의견에 대한 반박도 있었다. 일단 쓰임새부터가 다른 만큼 안드로이드의 기반이 되는 기술력은 아머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애초에 아머는 실루엣과 형태를 빼면 몸이 아닌 무기에 가깝다. 사람 그 자체를 구현하는 안드로이드와는 비교 대상조차도 될 수 없다. 무엇보다 할 수 있었다면 일찌감치 시스템이 아닌 안드로이드로 만들었으리라는, 지극히 수긍되는 의견이기도 했다.
과연 진실은 어느 쪽일지 아는 사람이라고는 토니 자신뿐이 없었다. 그러나 차마 본인을 붙잡고 그의 기술과 능력에 대한 무례한 질문을 할 수 없었던 요원들은 여유 시간의 심심풀이로서 논쟁을 즐기는 데에 그쳤다. 문제는 이 논쟁이 알게 모르게 새어나가 토니의 귀에까지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어벤져스의 멤버에 쉴드의 요원을 겸하고 있는 나타샤와 바튼이 있어서야 토니가 알기까지 시간 문제였던 셈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두 사람은 이 주제에 그리 큰 흥미가 없었다. 물론 약간의 호기심이야 있을 수 있고 정말로 토니가 쨘! 하고 안드로이드를 만들어 낸다면 감탄은 하겠지만, 그들과 하등 상관없는 안드로이드의 제작 가능 여부 따위는 호기심 이상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렇기에 나타샤와 바튼은 단순히 이런 얘기가 있던데요, 정도의 뉘앙스로 토니에게 그 주제에 대해 말했다. 그 전에는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 조차 나지 않는 별 것 없는 잡담 중에 흘러 지나간 말이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이름 모를 요원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서 시작되어 토니에게 사소하게 전달된 의문은, 토니를 제법 흥미롭게 만들어 주었다.
토니 스타크가 안드로이드를 만들 수 있는가. 그것이 돌고 돌아 드디어 답을 낼 수 있는 종착역을 찾아내었을 때, 그것은 더 이상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토니는 왜 자신이 진작에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아마 안드로이드에 그리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굳이 몸이 없더라도 자비스는 더 없이 완벽한 시스템이었다. 토니의 모든 작업 전반에 있어 자비스의 도움이 닿지 않는 곳은 없었고 자비스는 언제나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런 자비스에게 만약 몸까지 생긴다면? 토니는 자비스에게 직접 물었다. 네가 몸이 생긴다면 뭘 할 수 있을까?
자비스의 대답은 간단했다. 토니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청소를 하고, 회사까지 운전을 해주고, 필요할 경우 자신이 토니의 경호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어쨌든 기계는 인간보다 훨씬 튼튼할테니 말이다. 토니는 자비스에게 몸이 있을 경우 생길 가능성들에 대해 그리 큰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해피나 페퍼가 조금 더 편해 질 수는 있으리라 여겼다.
토니 스스로에게는 꼭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페퍼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시도해 볼 가치는 있을 것 같았다. 토니는 바로 어제만 해도 페퍼에게 ‘난 비서지 가정부가 아니에요!’ 라는 잔소리를 들었던 일을 상기했다. 마침내 토니는 마음을 굳혔다. 안드로이드를 만들어 보자.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가능 여부는 토니에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토니는 자신이 가진 기술과 지식 중 필요한 것들을 세심하게 구분하여 활용했다. 가히 천재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남자에게는 아이언맨 아머가 그러했듯이 안드로이드 역시 단순한 상상에서 끝나지 않았다. 기계 장치를 이용해 형태와 뼈대를 만들고, 성형외과 등에서 흔히 사용되는 실리콘과 인공 피부로 껍질을 만들어 씌우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자비스의 시스템과 연동하여 움직임을 구현했다. 안드로이드의 복잡한 구현 과정을 이런 간단하기 짝이 없는 세 단계로 나누고서 토니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생각대로 되는 듯 했다.
본래 새로운 시도와 도전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되는 법이거늘 토니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아이언맨 수트를 만들면서도 항상 자비스의 테스트 권유를 흘려 듣곤 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어쨌든, 최초의 안드로이드 자비스가 완성되었을 때, 토니는 자신의 천재성에 감탄하는데 급급해 이번에도 역시 테스트와 시뮬레이션 단계를 건너 뛰어 버렸다. 처음에는 그래도 괜찮아 보였다. 움직이기 시작한 자비스가 그의 첫 번째 임무로서─사람에 비하면 약간 경직되어 있을지는 몰라도─자연스럽게 주방으로 들어가 그 동안 쟁여 놓았던 인스턴트 음식을 죄다 쏟아버릴 때 까지만 해도. 토니는 이제 매일 손수 만든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겠다는 즐거움과 함께 자신이 제법 만족스러운 작품을 만들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지하 연구실에 앉아 토니는 초조하게 엉덩이를 들썩였다. 어느 순간이든 손에 공구를 들었다 하면 항상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던 토니 답지 않게, 영 집중을 하지 못해 홀로그램에 떠오른 표시를 무심코 빠트리기라도 했는지 자비스의 경고음이 들렸다. Sir. 3번 실린더에 기압이 너무 낮습니다. 자신이 손보고 있는 엔진을 앞에 두고 연신 윗층으로 올라가는 문을 힐끔거리던 토니는 자비스의 목소리에 뒤늦게 퍼특 정신을 차렸다. 음. 그래. 그렇지. 그제서야 토니는 허겁지겁 실린더의 나사를 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엔진에 집중하게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저기, 자비스?”
「Yes, sir.」
“너 지금 괜찮아? 어, 그러니까 내 말은. 네 몸 쪽 말야.”
자비스의 시스템은 평소와 같이 연구실에서 토니의 작업을 보조하는 한편 이제는 안드로이드 몸의 조종까지 맡고 있었기에 넌지시 넌진 질문이었다. 그 말을 들은 자비스가 잠깐 대답이 없이 침묵하자 토니는 불안감과 초조함을 느꼈다. 나사를 조이던 것도 잊고 방정맞게도 다리까지 달달 떨어가며 기다리니, 비로소 자비스의 대답이 들려왔다.
「문제 없습니다.」
“뭐 하고 있는데?”
「주인님의 점심 식사로 오믈렛을 만들고 있습니다.」
토니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자비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토니는 공구마저 던져버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불을 쓰고 있단말야?! 토니의 입이 떡 벌어졌다. 여전히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가 없다는 듯 태연한 목소리로 그렇다고 대답하는 자비스의 시스템 음성을 뒤로 하고 허겁지겁 계단을 올라가려는 찰나. 마치 기다렸다는 듯 머리 위의 지상에서 시끄러운 경고음이 굴러 내려오기 시작했다. 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 주방에 설치된 화재경보기의 규칙적인 알림음에 이번엔 자비스의 음성까지 더해졌다.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토니는 머리칼을 쥐어 뜯으며 발을 굴렀다.
“그 정도는 나도 들으면 알아! 그러게 불은 필요 없는 샌드위치 같은거나 만들라니까!”
「하루 권장 섭취 열량과 영양소를 고려할 때 주인님께서 간편하게 드실 수 있는 최적의 메뉴는…」
“제기랄, 자비스. 그런건 신경쓸 필요 없으니까 제발 전자렌지에 카레나 데워!”
「인스턴트 음식만 드셔서는 제게 몸을 주신 의미가 없습니다.」
토니는 짜증이 가득 담긴 의미 불명의 신음소리를 내며 비로소 회색 연기를 내고 있는 주방에 도착했다. 다행히 저택의 화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을 해 준 덕분인지 가스렌지에서 시작된 불이 번지지는 않았지만 주방은 하얀 소화기 분말로 엉망이었다. 자비스는 그 한가운데에 가만히 서 있었다. 불과 몇 초 전만 해도 대형 참사가 났었던 흔적이 역력한 이 주방 꼴만 아니라면, 앞치마를 두르고서 후라이팬을 손에 든 이 훤칠한 키의 영국인 스타일 냉미남이 제법 멋지게도 보이겠지만 지금은 그저 얼같이 같을 뿐이었다.
토니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엔 뭐가 문제였는지를 물었고 자비스는 불 위에 기름을 부워버렸다고 대답했다. 눈으로 인식한 위치와 그 곳을 겨냥한 팔의 움직임이 어긋난 듯 했다. 이제 더 이상 프로그램을 조정할 기운도 나지 않았다. 토니는 그저, 샌드위치나 만들라고 말했다가,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제 말을 정정한 후 심적으로 지친 몸을 질질 끌며 연구실로 내려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날의 사건 사고는 금방 진압할 수 있었던 화재로 끝나지 않았다. 토니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자비스는 또 한 번 주방에 손을 대었다. 항변하자면 자비스는 딱히 토니의 명령을 어긴 것 까지는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그 말을 음식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적어도 소화기 분말로 온통 지저분해진 주방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여긴 것이다.
자비스의 그러한 판단은 실로 합당하긴 했다. 이전 같았으면 느리고 멍청한 더미가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들여 정리하거나 혹은 청소부를 불렀을 일이지만 지금 자비스에게는 몸이 있었다. 그것도 집게뿐인 더미보다 훨씬 효율적인 형태의 몸이. 자신의 일을 토니에게 일일이 보고하고 허가를 받아야만 하는 하위 프로그램이 아니었던 자비스는 자연스럽게 토니의 별다른 지시가 없었음에도 주방 청소에 착수했다. 자비스의 자의적인 판단과 행동은 늘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의 안드로이드 시스템은 메인 시스템과는 다르게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되었냐고? 오믈렛을 만든답시고 가스 위에 기름을 들이부운 전적을 보고 무엇을 기대할까. 화재경보음이 꺼진지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또 한 번 온 집안이 떠나가라 경보음이 울렸을 때 연구실에서 뛰쳐나온 토니가 본 광경은, 주방을 물바다로 만들다 못해 연구실 계단 아래로 줄줄 흐르고 있는 비눗물이었다.
사실 자비스를 만들 때, 토니는 어쩌면 자신이 제 인생 최고의 역작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흥분감에 빠져 있었다. 안드로이드를 만들기로 마음먹고 자비스의 바디를 디자인하던 그 날을 떠올렸다. 그날 토니는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무수히 많은 종류의 남성 모델지를 구독했다. 약간의 백치미가 느껴지는 전형적인 금발의 미국 미남부터 섹시한 영국 신사, 다부진 호주 출신 짐승남까지 온갖 스타일의 유명 모델과 배우를 머리카락 한 올 까지 꼼꼼히 뜯어보면서 자비스의 외형을 구상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물론 토니 자신을 제외하면─남자를 만들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몰랐다.
어떤 배우는 키가 크고 훤칠하니 몸매가 잘 빠진데다 큼직하고 긴 손가락이 유혹적이며 날카로운 이목구비는 귀공자 마냥 세련되었으나 그렇잖아도 적은 머리숱에 이마는 지나치게 넓었다. 언뜻 슬림해 보이지만 다부진 팔뚝이 남성미를 뽐내는 묘한 매력과 분위기가 있는 남자도 있었으나 키가 영 작달막했다. 아무래도 인간인 이상 눈에 차지 않는 부분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지만, 토니는 자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정말로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아름다운 안드로이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거치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토니는 정말로 그런 안드로이드를 만들어 내었다. 토니가 만든 자비스는 길쭉하게 키가 컸고 그의 영국식 억양이 멋들어지게 어울리는 영국인다운 외모였다. 태양빛이 적은 나라답게 볏짚처럼 연한 금발과 잿빛이 섞인 옅고 푸른 눈에는 퇴폐적인 오묘한 매력이 담겼다. 깊은 아이홀과 날카로운 콧대가 살짝 주름진 이마에서 느껴지는 완숙미에 섹시함을 더했다. 토니는 자비스의 외형에서 부족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남자라는 사실과는 무관하게 어쨌든 자비스는 토니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안드로이드였다. 비록─인정하기는 싫지만─아직 부족한 기술로 인해 외형은 완벽할지 언정 섬세한 인간의 행동 하나하나를 재연하기에는 부족한 시스템이 집에 부를 지를 뻔 하고, 계단에는 비눗물로 급류를 만든다고는 해도 말이다. 어디 그 뿐일까. 폐기를 각오할 때 마다 그놈의 녹아내릴 만치 달콤한 얼굴을 마주하고는 결국에 포기하기를 수 번, 자비스가 저지른 오류투성이 실수는 세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토니가 자비스를 폐기한다는건 이미 불가능할지도 몰랐다. 지금까지의 전적 중 특히 기겁했던 사건을 떠올려 보면 더욱 확신이 들면서 역시 폐기할 자신이 없어지고 만다. 다름 아닌 세탁기를 돌리려다 감전될 뻔 했을 때였다. 그 잘생긴 얼굴이 새까맣게 타서 표피가 벗겨질 뻔 했으니까! 자비스가 오류 행동을 저지를 때 마다 진지하게 폐기를 고민하던 토니였으나 이때만큼은 고민은커녕 자비스의 얼굴을 고치는데 여념이 없었다. 결국 토니는 자비스를 다시 완벽한 상태로 원상복귀 시켰고 내심 이 끝내주는 미남을 제 손으로 처분하는 순간은 영영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널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자비스?”
“제 기능에 대해 탐탁지 않으시다면 폐기하시면 됩니다.”
“그것도 별로 탐탁지 않단 말이지. 솔직히 넌 서 있기만 해도 그림이 된단 말야.”
자비스는 납득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철저하게 논리적이며 이성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하는 과학에서 태어난 그가 유일하게 영원히 이해 못할 행동이 있다면 바로 예술 행위, 그 중에서도 특히 감상의 개념이었다. 자비스는 단순히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다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저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으나, 그럼에도 토니는 엉뚱하게도, 마치 고민에 빠진 듯 고개를 기울인 자비스를 바라보며 또 한 번 감탄하고 있었다. 역시 잘 생겼어. 반할 것 같잖아. 이건 정말 반칙이야. 토니는 솔직하게 투덜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폐기만큼은 결단코 할 수 없었다.
토니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어떻게 해도 아까웠다. 폐기하기에는 너무 잘난 얼굴이었고, 그렇다고 정말로 프로그램을 끈 채 몸만 덩그러니 저택 한 쪽에 세워두기에는 또 너무 잘난 얼굴이다. 이 일은 지지리도 못하는 얼굴 간판을 어디에 써 먹어야 좋단 말인가. 한참이 지난 후에, 토니는 손가락을 퉁겼다. 자비스를 똑바로 바라보며 씩 입 꼬리를 끌어 올린 미소를 짓자 마치 못된 일을 계획하는 악동처럼 보였다.
“좋아, 자비스. 쓸 만한 방법이 생각났어.”
한때 쉴드 요원들의 안주거리이자 열띤 토론의 주제였던 ‘토니 스타크는 안드로이드를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이미 유행으로부터 한참 지난 이슈가 되어 있었다. 명확한 답이 나온 것도 아닌데 어느 사이엔가 의문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 대신 정확한 출처는 알 수 없으나, 언제부턴가 쉴드에 새로운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토니 스타크가 변태래. 토니 스타크는 로봇성애자래. 토니 스타크는 사실 아무도 몰래 안드로이드를 연구하고 있는데 그걸 숨기는 이유는 그렇고 그런 용도를 위한 거라서… 블라블라블라.
비록 카더라일지 언정 나름 시작점이 확실하게 존재하는 소문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예의 유행 지난 이슈에 대한 궁금증을 도무지 참을 수 없었던 넉살 좋은 요원 하나가, 결국 토니를 붙잡고 농담을 던지듯 물어봤더란다. 물론 직접적이지는 않았다. 좀 더 우회적으로, 토니의 답변을 유도하듯 언젠가 기술이 발달해 안드로이드를 만들 수 있으면 참 좋지 않겠냐는 질문을 던졌다. 아마 그 요원이 기대한 대답은 순순한 긍정이나─말인즉슨 토니에게도 그런 기술이 없다는 뜻이니까─개발 할 것도 없이 이미 자신은 안드로이드를 만들 수 있다는 거만한 반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토니는 안드로이드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꿈을 꾸듯 멍한 표정을 짓더니 섹시 글래머의 끝내주는 금발 미녀를 앞에 두고도 내지 않을 황홀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 안드로이드. 좋지. 아주 좋아. 정말 끝내줘. 완벽하지.
말이란 변질되고 과장되기 마련이다. 어쩌다 토니의 이 의미불명의 감탄사가 ‘안드로이드랑 떡치고 싶다’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나, 요원의 입에서 입으로 와전되어 완성된 토니는 안드로이드를 상대로 발정할 수 있는 특이한 로봇성애, 혹은 메카닉성애자가 되어 있었다.
물론 토니에게도 이 낭설과도 같은 소문을 잠재울 기회가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나타샤를 통해서였다. 사실 토니에게 소문에 대해 묻기 전 까지만 해도 나타샤는 그것이 아주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토니 스타크가 뭐가 아쉬워서! 어쩌면 그녀가 남자인 토니에게 섹드립에 가까운 그런 말을 꺼낼 수 있었던 것도 소문을 사실 보다는 실컷 비웃을 유머로 받아들였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당신 로봇이랑 섹스하고 싶다면서요? 웃음기를 머금고 이 말을 던졌을 때만 해도 나타샤는 토니가 특유의 재치와 농담으로 이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받아쳐 그녀를 웃게 해 주리라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토니의 표정은 진지했고 대답은 오묘하기까지 했다. 토니는 한껏 웃을 준비 중인 나타샤를 바라보며 짧지만 강렬하게 말했다. 어렵진 않아. 내가 움직이면 되니까.
나타샤의 입매가 떨렸다. 나타샤는 그것을 일종의 유쾌한 장난으로 받아들이려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그래서 섹스를 하고 있다는 건지 단순히 할 수 있다는 건지 의미조차 명확하지 않은 애매한 대답이었다. 답지 않게 진심이 가득 담긴 토니의 표정에 나타샤는 이 이상의 것을 물었다가는 그리 좋지 못한 진실에 발을 들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직감했다. 토니는 굳이 더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다는 듯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 후 제 갈 길을 가버렸고, 나타샤는 어쩌면 소문을 더욱 변태적으로 키울 수 있는 토니의 답변을 자신의 가슴 속에 영원히 묻어두기로 결정했다.
덕분에 진위 여부가 불가능한 소문은 점차 줄어들어, 이제는 신입 요원을 놀릴 때나 써 먹는 레퍼토리 정도로 전락해 버렸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어리버리한 신입 요원을 실컷 놀라게 해 준 후 속았지! 라고 외칠 때 사용하곤 하는, ‘토니 스타크는 안드로이드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숨기는 이유가 밤놀이 상대이기 때문’이라는, 순전히 낭설을 좋아하는 요원이 한껏 부풀려 지어낸 이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