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5

 

이와이 무네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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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아마미야 렌)


한산한 가게에서 렌은 마른 행주로 유리잔을 닦고 있었다. 마담인 라라의 제안에 마음이 흔들려 신주쿠의 바 뉴커머에서 저녁 아르바이트를 시작한지 어느덧 열흘이 지났다. 단골 위주로 운영되는 뉴커머는 물장사를 하는 가게 치고는 지저분한 손님이 없다. 뿐만 아니라 마담인 라라도 좋은 사람인지라 술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걱정할 만한 일이 생긴 적은 지금껏 단 한번도 없었다. 접객이라고 해봐야 손님들의 소소한 말상대가 전부였으며 렌이 하는 일은 대부분 설거지와 물품 정리였다. 꽃집이니 편의점이니 규동집이니 아르바이트에는 제법 잔뼈가 굵은 편이었는데 다른 곳들 보다도 뉴커머의 일은 특히 마음에 들었다. 일단 시급이 높기도 하거니와 다양한 손님들과 마주쳐 대화를 하다보면 시야를 넓히는데 도움이 된다. 

렌의 아르바이트 시간은 늦은 낮에서 이른 밤 까지였다. 일이 있는 날이면 방과후에 적당히 시부야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때우다가 어스름해질 때 즈음 신주쿠로 넘어간다. 아예 해가 진 다음 장사를 시작하는 다른 가게들에 비하면 뉴커머는 신주쿠의 환락가 중에서도 개점 시간이 빠른 편이었다. 하지만 손님이 오기 시작하는 시간은 여느 다른 바들과 다르지 않아서 지금처럼 개점 직후에는 제법 한가했다. 

어차피 손님도 없을 시간인데다 오는 손님이라고는 단골 뿐. 열흘 동안 일을 익히면서 렌은 이미 뉴커머의 모든 단골들과 안면을 터놓았다. 덕분에 라라는 때로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잠시 자리를 비우는 여유까지 가질 수 있었다. 오늘도 렌이 출근하자 마자 '아마미야군이 있어줘서 다행이야!' 라는 말과 함께 가게를 비운 탓에, 렌은 혼자였다. 제 아무리 일을 시작하기 전 부터 가게에 들락거리며 친분을 쌓은 사이라지만 이제 겨우 열흘차 아르바이트생에게 아예 가게를 맡겨버리다니. 걱정되는 한편으로는 그만큼 믿어주고 있다는 뜻일테니 고맙기도 하다. 

렌은 시간을 확인했다. 영업 준비는 벌써 한참 전에 끝났다. 이미 반짝반짝 윤기마저 흐르는 유리잔을 또 닦기도 지겨워서 바 안쪽에서 늘어져라 기지개를 했다. 오늘은 어떤 손님이 오려나. 뉴커머에 오는 사람은 얼추 정해져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매일같이 발도장을 찍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어제같은 경우는 머리를 붉게 염색한 샐러리맨이다. 본인 말로는 무려 도쿄대를 졸업했다나. 그 말이 진짜라면 왜 고작 월급쟁이 따위나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 남자가 자랑하듯 쏟아내는 잡지식들을 듣고 있으면 제법 잡학박식해서 무심코 '정말 도쿄대 출신일지도 몰라' 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하지만 오늘은 얼굴이 무서운 아저씨가 오면 좋겠다. 렌은 일을 시작한 첫 날부터 그 손님을 접객했었다. 첫 날의 손님은 야쿠자 마냥 무서운 얼굴의 아저씨와 세련된 검은 수트를 차려입은 오피스 레이디였는데, 예의 아저씨에게는 차마 말 조차 걸기 어려운 무언의 오오라 비슷한 것이 있었다. 그런 남자에게 배짱 좋게 말을 걸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렌이 시부야의 밀리터리샵을 밥먹듯이 드나들고 있기 때문이리라. 제 아무리 야쿠자같이 생긴 남자라고는 해도, 렌이 곧잘 가는 밀리터리샵의 점장인 진짜 야쿠자─정확히는 전 야쿠자지만만큼은 못했다. 그 날 일을 전부 끝내고 라라가 말하길 그 다혈질인 아저씨를 그렇게 잘 상대할 줄 몰랐다고 한다.

이것이 렌이 뉴커머에서 하는 아르바이트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오컬트 소설을 읽기에는 아침 전철은 항상 만원이고 공포 영화를 보기에는 상영일을 깜박 놓치기 일쑤다. 레스토랑에 죽치고 앉아있으려 해도 그렇잖아도 가벼운 지갑을 더 가볍게 만드는 일은 사양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뉴커머는 고작 라라조차 꺼려하는 성격 더러운 아저씨를 접객하는 정도로 돈까지 벌면서 배짱을 키울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최근 렌은 이와이와 미묘한 거리감을 느꼈다. 무언가 하려는 말이 있는지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도, 혼자 쯧 혀를 차면서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 시선이 어찌나 노골적이었는지 시기까지 얼추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분명, 츠다라는 남자를 직접 만날 예정이니 그때가 되면 입회인이 되어달라 부탁한 이후부터다. 이쪽은 대체 언제 쯤이면 입회를 요구할지 기다리고 있거늘 이와이가 판단하기에 아직 야쿠자끼리의 자리에 끼기에는 렌이 영 미더워보이지가 않는지 아직까지도 소식이 없다. 이와이와의 관계가 썩 마음에 드는데다 카오루에게도 정을 붙여버린 렌으로서는 이 이상 진전되지 않는 관계에 초조해질 법도 했다. 그 결과 렌이 내린 해결 방법은 간단했다. '배짱을 어필해야 해.'

뉴커머의 손님인 인상 더러운 아저씨는 렌의 좋은 연습 상대인 셈이다. 고작 열흘이 지났을 뿐이지만 첫 날에 비하면 남자의 말상대를 하는 것도 제법 능숙해졌다. 이제 렌은 첫 날 만큼 남자를 상대하는 일이 걱정되지도, 불안하지도 않았다. 마침 요 근래 카와카미가 수업 중 여유시간을 자주 만들어주고 있으니 틈틈히 오컬트 서적도 읽으면서 담력을 기르다 보면 곧 이와이와 더 가까워 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출입문의 방울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아직 라라는 돌아오지 않았다. 물론 그건 별로 상관 없지만, 렌을 혼자 두고 자리를 비우곤 해도 라라는 시간을 잘 지켰다. 그녀가 없다는 것은 아직 손님이 오는 시간이 아니라는 뜻이다. 내심 별일인걸, 하고 생각하면서도 오늘은 어떤 단골일지 궁금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어, 어?!"

손님의 얼굴을 확인한 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오늘의 손님이 되어주길 바랐던 '얼굴이 무서운 아저씨'가 가게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단지, 늘 오던 아저씨와는 또 다른 '얼굴이 무서운 아저씨.' 라는게 문제일 뿐.

"이와이씨?"

놀라거나 말거나, 이와이는 뻔뻔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그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 없는 막대사탕의 끝을 까닥이더니 히죽 웃었다. 

"오. 정말 있잖아? 너, 이런 곳에서도 일하냐?"

바 앞에 앉은 이와이는 어른다운 능숙한 태도로 렌이 채 외우지 못한 양주며 와인 이름이 빼곡히 적힌 메뉴판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렌은 입 속으로 끄응, 곤란한 한숨을 쉬었다. 대체 어디에서 정보가 새나갔을까. 출근이나 퇴근길에 스쳐 지나가기라도 했던 걸까? 언터쳐블과 뉴커머까지 제법 거리가 있다고는 해도 그래봤자 신주쿠와 시부야는 JR 네 정거장. 무엇보다 도쿄에 살면서 신주쿠같은 번화가에 단 한 번도 오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의 주된 활동 영역이 아니라고 해서 지나치게 방심했다. 

뉴커머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렌은 단 한 번도 언터쳐블에 가지 않았다. 개인적인 시간들을 좀 더 즐기고 싶어서 팰리스는 일찌감치 보물이 있는 곳 까지 잠입 루트를 확보해 놓은 상태였고 무기도 가장 좋은 것들로 업그레이드를 끝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와이가 그에게 츠다와의 자리에 입회를 요구하기 전 까지는 딱히 언터쳐블에 볼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렌이 틈만 나면 밤 시간을 언터쳐블에 할애했던 것은 단순히 이와이와 가까워지고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그런 은근한 욕망을 참아가며 보다 그의 눈에 차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이와이의 잘생긴 얼굴도 보러 가지 못하고 뉴커머 아르바이트에 전념했거늘, 아직 완전히 준비되지도 않았는데 본인이 먼저 나타나 버린 것이다. 짜증스러울 정도로 섹시한 완숙미가 넘치는 얼굴을 감상하는 일은 항상 즐거웠지만 지금 만큼은 아니다. 침착하고 고요한 얼굴 뒤로 좌절과 낭패를 느끼던 렌은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정신차려라, 아마미야 렌. 네가 지금까지 뭘 위해 아름다운 O.L누님을 놔두고 성질 나쁜 아저씨를 접객해가며 배짱을 갈고 닦았는지 생각해. 전화위복이라는 말도 있다. 이건 기회였다. 아직까지도 그를 애송이 취급하는 이 남자에게 당돌한 한 방을 먹여줄 기회!

"어디보자."

메뉴판을 보고 있던 이와이가 어깨를 으쓱이더니 그것을 바 위에 툭 던지듯 내려놓았다. 

"마티니. 진으로, 흔들지 말고 저어서. 올리브 두 개."

…아, 망했다. 렌은 뒤늦게야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 깨달았다. 명색이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면서, 렌은 술을 따르기는 커녕 술병에 손도 대 본 적이 없었다. 술장사에 미성년자를 고용하고 있는 이상 지키고 있는 라라 나름대로의 엄격한 룰이었다. 사실 그가 주류 주문을 받는다고 해서 지금 이와이의 주문을 소화해 낼 수 있을지는 또 다른 이야기다. 주문을 받고 술잔을 내주는 사람은 늘 라라지만 렌도 그 곁에 서서 귓동냥으로 들은 것들은 있었다. 단언하건대 지금껏 단 한 번도, 그 어떤 손님도, 이와이 같은 주문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혹시 장난치려는 건가? 렌은 영문모를 능청스런 웃음을 짓고 있는 이와이의 얼굴을 수더분한 앞머리 너머로 노려보았다. 어느 쪽이든 그의 앞에서 바보같아 보이기는 싫었고 어린아이 처럼 보이기는 더 더욱 싫었다. 

"없어."
"없어?"

렌은 입을 삐죽거리며 다시 한 번 말했다. 

"없어."
"모르는게 아니라?"
"진짜야. 오늘 발주가 아직 안들어와서."
"흐음."

막대사탕을 까닥이더니 턱을 괴었다. 렌은 애써 저를 빤히 바라보는 이와이의 시선을 피했다. 일하는 척, 닦을 필요도 없는 글라스를 닦으면서─벌써 세 번째 였다. 유리가 닳지 않는게 다행일 지경이다.─눈으로는 빠른 속도로 진열장에 있는 술병의 라벨을 흩었다. 행여 마티니라는 이름의 병이 있는지 찾아볼 요량이었으나 하필이면 술 이름이 꼭 영어인 법은 없다는 사실만 깨달았을 뿐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명제가 역으로도 성립될 줄이야. 지식을 대신해 배짱을 선택한 지금의 렌으로서는 설령 영어라 한들 멋들어지게 휘갈겨 써진 필기체를 완벽하게 읽을 수가 없었다.(돈이 좀 들어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커피나 시킬걸. 렌은 뒤늦은 후회를 했다.)

"좋아, 그럼."

괜찮은 변명이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다행히 납득해주었는지 이와이가 주문을 바꿨다. 긴장하는 한 편, 마음 속으로 제발 아사히 맥주에 완두콩이나 먹어주기를 기도했다. 일단은 무신론자지만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씩은 성당을 들락거리고 있으니 이 정도 바람은 들어줄지도 모른다.

"블로우잡으로."

…아무래도 하느님은 성당에 와서 예배따윈 보지않고 사라지는 불청객에겐 관심이 없나보다.

"오르가즘도 괜찮고."
"ㅁ…뭐, 뭘 달라고?!"

렌은 무심코 말을 더듬고 말았다. 이번건 장난이 분명하다는 생각에 화를 내려 했으나 예의 비죽거리는 능청스러운 웃음기마저 지워버린 이와이는 한없이 진지해보이기만 했다. 물론 그렇다고 렌이 이와이의 의도를 알 수 있을리는 없었고 대체 뭘 말하는거냐고 물어보기에는 또 다시 어린애 취급이나 당할 것 같다. 멀뚱하니 선 렌이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자 이와이가 툭 던지듯 말했다.

"뭐야, 모르는가보지?"

 

지금까지 누구때문에 배짱을 키운답시고 갖은 고생을 했는데, 정작 마주하고 나니 배짱이 아닌 지식을 시험당하고 있는 것만 같아 기분이 상했다. 입을 꾹 다문 렌이 말없이 이와이를 노려보고 있을 때 마침 타이밍 좋게도 이 상황을 타파해줄 수 있는 구세주가 나타났다. 

 

"어머나. 벌써 손님? 별일이네."

어느새 돌아온 라라가 바 안쪽으로 들어왔다. 한 쪽 다리를 반대쪽 허벅지에 올리고서, 턱을 괴고 거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를 고수하던 이와이가 갑자기 평범한 손님마냥 자세를 바로 바꿔 앉았다. 가게 오너가 있는 이상 렌에게는 흥미가 없다는 양 곧장 라라에게로 시선을 돌려버린 이와이가 그녀에게 똑같은 주문을 했다. 짐짓 성희롱처럼 느껴지는 주문을 듣고도 렌과 달리 라라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단지 '혼자온 손님인데 취향도 독특해라.' 라고 중얼거렸을 뿐이다. 그제야 렌은 이와이의 그것이 의외로 제대로 된 이름이라는 것과, 칵테일 종류라는 것, 어쨌든 그런 이름을 주문한건 결국 렌에게 장난을 치려는 의도가 맞았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이와이의 의도에 멋지게 휘말리고 있는 중이었다는 것까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와이에게 칵테일을 제조해주는 라라는 능숙해보였고 라라를 대하는 이와이의 태도는 점잖았다. 렌 같은 '어린애' 를 대할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분한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애초에 가게에는 왜 온걸까. 아무리 렌이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한들, 설마하니 정말로 성희롱같은 칵테일이나 주문하면서 일방적으로 놀려먹기 위해? 렌이 그 단어에 반응하든 반응하지 않든 이와이에게는 우습게만 보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목덜미가 확 달아올랐다.

갑자기 테이블을 쾅! 박차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 방문한 손님과 모처럼의 친분을 쌓아보려던 라라가 화들짝 놀라 옆을 돌아보았다. 앞치마를 바 위에 내려놓은 렌의 움켜쥔 주먹이 파르르 떨리는것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당황한 라라가 먼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렌은 벌써 가방을 집어들고 있었다.

"갑자기 몸이 안좋아서. 오늘은 가볼게요."
"아, 알았어. 몸 조심해, 아마미야군."

평소와는 명백하게 다른 기색을 느꼈지만 라라는 순순히 렌을 배웅해 주었다. 은근히 성실한 저 아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저런 태도를 보일 리 없다는 판단이었다. 대신 손님이 놀라지나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매서운 인상 만큼이나 보통 사람은 아닌지 아르바이트생의 갑작스런 소란 따위에 신경쓰는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그는 지루한 표정이었고 라라가 내준 칵테일에는 한 모금도 입을 대지 않았다. 마치 애초에 마실 생각도 없었던 것 같았다. 별난 손님이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물건을 가지러 안쪽 창고로 발걸음을 옮겼다.

라라의 짐작대로 이와이는 칵테일을 마실 생각이 없었다. 애당초 블로우잡은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저 알고 지내는 녀석이 무려 술집에서 일을 하는 기색이기에 제대로된 곳인가 확인할겸 방문해봤을 뿐이었다. 다행히 미성년자를 고용하는 곳 치고 오너가 그리 경우 없는 사람은 아닌 듯 해서, 맘 놓고 시간이나 때우다 가려했더니 렌 녀석은 앞서 친 장난이 과했는지 나가버렸다. 나이 치고 제법 쓸만한 녀석이라 생각했는데 그래봤자 어린애. 끓는점이 지나치게 낮았다.

주머니에 쑤셔 박아놓은 핸드폰이 부르르 떨렸다. 그에게 연락을 할 만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십중팔구 카오루가 왜 집에 안들어오냐며 재촉하는 문자일 것이다. 어차피 렌이 없는 이상 이곳에 더 있을 필요는 없었다. 테이블에 약간을 팁을 더해 놓고 몸을 일으키며 핸드폰을 꺼내자 카오루가 아닌 뜻밖의 인물에게 문자가 도착해있었다.

「당장 가게 밖으로 나와.」

어쭈. 이와이의 눈썹이 추켜올라갔다. 명백하게 시비를 걸고있는 어투다. 기분이 상했다고 따지고 들기라도 하려는 셈인가? 그런 어린애 투정에 어울려줄 마음은 없었다. 무시하고 핸드폰을 끄려는 찰나 귀신같이 알아챘는지 또 한 번 핸드폰이 진동했다.

「당신이 원한거. 줄테니까.」

허. 반사적인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믿을 수 없다는 듯 계속해서 액정을 들여다보며 두 눈을 깜박이길 수 번, 가게를 나가기 직전 오기에 가득 찬 시선으로 저를 노려보던 렌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이번에는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걸어오는 싸움을 결코 피하지 않는 주의라는 것은 렌도 잘 알고 있으리라. 그런 주제에 이런 문자를 했단말이지.

"뭐야. 생각보다 배짱이 두둑했잖아?"

슬슬 즐거워지려는 기분마저 느끼며 이와이는 가게 문을 나섰다. 이번에는 렌의 바람대로 확실히 '어른 취급'을 해볼 생각이었다. 과연 이 배짱 좋은 녀석이 어디까지 받아낼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말이다.